마음공부

나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 사랑과 풍요를 허락하는 연습

ohom 2025. 6. 22. 08:11

받는 일은 늘 어색했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건네줄 때, 나는 자주 손보다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이걸 내가 받아도 되나?’, ‘혹시 부담이 되진 않을까?’, ‘갚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받은 기쁨보다, 미안함이 앞섰고, 때론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도움을 받는 순간에도 나는 스스로를 작게 느끼곤 했다. 그래서 감사보다는 죄책감을 더 많이 느꼈고, 웃음보다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의 오래된 방식이었다. 어릴 적부터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착한 사람은 베푸는 사람이고, 강한 사람은 참고 견디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나 돈, 애정은 어딘가 모르게 낭비처럼 느껴졌고, 누군가에게 받는 호의는 언제나 되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늘 주는 일에 익숙해졌고, 받는 일에는 서툴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토록 받는 것에 힘들어할까? 왜 나는 늘 미안해하며 살아갈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왜 믿지 못할까?' 마음공부를 통해 내 안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받지 않기로 선택해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선택 뒤에는 아주 오래된 믿음이 숨어 있었다는 것도. 그것은 바로, '나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무의식적인 패러다임이었다. 내가 가진 게 부족해서, 내가 아직 충분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믿음을 내려놓고 싶다. 아니, 내려놓을 수 있다. 나도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를 받을 자격이 있고, 작은 선물 앞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고, 응원받고 격려받으며 성장해도 되는 존재라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싶다. 나에게 사랑을 허락하는 것, 풍요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선택의 문제였다. 이제는 나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믿고 싶다. 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그 연습은 삶을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작은 출발이라는 것을 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려 한다. 받아도 괜찮아. 너는 받을 자격이 있어. 그리고 그 사랑과 풍요는, 너를 위해 이미 와 있었어.

나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 사랑과 풍요를 허락하는 연습

1. “나는 왜 받는 게 어려웠을까?” — 내 안의 오래된 신념 바라보기

어릴 적부터 나는 받는 일에 서툴렀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줄 때, 내 안에서는 묘한 불편함이 올라왔다. 감사하기보다는 죄책감이, 기쁘기보다는 부담이 먼저였고,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이런 걸 받아도 될까 하는 의심이 따라붙었다. 이 감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나는 오랫동안 그 감정의 뿌리를 찾아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부모님과의 관계, 어린 시절의 경험, 사회 속에서 배운 가치관들이 퍼즐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내가 받는 것을 어려워했던 이유는, 내가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게 된 건 아주 작은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누군가 나에게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그 아이는 그냥 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그 선물을 받은 뒤 며칠을 불안해하며 살았다. '나도 무언가 돌려줘야 하는데', '이걸 괜히 받았나'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 기억은 내 안에 아주 깊게 자리 잡았다.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받으면, 나는 반드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고, 그 의무는 시간이 지나며 죄책감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나는 받지 않으려 애썼다. 받는 대신 주는 사람이 되기를 택했고, 그게 더 안전하다고 믿었다. 마음이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 나는 늘 주는 입장에 서려고 애썼다. 주는 사람은 미안하지 않지만, 받는 사람은 어쩐지 위축된다는 생각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도움을 받는 것이 곧 의존이 되는 것 같았고, 사랑을 받으면 언젠가 그 사랑이 조건이 되어 돌아올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게 손을 내밀어도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고, 진심 어린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해 멀어진 관계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호의를 믿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호의를 받을 자격이 내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어떤 자격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이제는 그 오래된 믿음을 다시 바라본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누군가 일부러 나를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자라며 형성된 무의식의 방식이었고, 그 방식이 나를 지켜주는 듯했지만 결국은 나를 고립시키는 벽이 되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받는 것이 곧 사랑받는 것이고, 사랑받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받는 일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유연하게 하고, 삶의 흐름 속에서 주고받는 순환을 완성하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받은 것을 통해 다시 줄 수 있기에, 받는 일 또한 사랑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2. “받아도 괜찮아” — 마음 깊이 허락하는 연습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건네받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일이다. 누군가의 호의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는 받아도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내면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그 허락을 자기 자신에게 내리지 못한다. 나 또한 그랬다. 누가 음식을 만들어주면 괜스레 미안했고, 누군가 내 칭찬을 해주면 “아니에요, 그냥 운이 좋았어요”라며 얼른 부정해버리곤 했다. 내 마음 어딘가에는 “나는 아직 받기엔 부족해”라는 목소리가 숨어 있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나는 하루하루 작은 연습을 시작했다. 마음으로부터 허락하는 연습, 내가 받아도 괜찮다는 감정의 허용 연습이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너는 받아도 괜찮아. 네가 잘못한 것이 없어. 네가 특별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받을 자격은 충분해.” 그런 말들이 처음엔 어색하고 오글거렸지만, 날마다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친절을 거절하지 않고 “고마워요” 하고 웃으며 받는 것이 익숙해졌고, 누군가 나를 칭찬해줄 때 “그 말 들으니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음식을 주면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라는 말이 진심으로 나왔다. 예전 같으면 부담스러워하고 도망쳤을 상황들에서, 나는 점점 더 나답게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마음의 공간을 넓히는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주려는 그 마음은 사실, 삶이 나에게 보내는 사랑의 한 방식이다. 나는 그동안 그 사랑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긴 내가, 사랑이 다가오면 오히려 움츠러들고 도망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조건부로 사랑받는 경험 속에서 길들여진 생존 방식이었다. ‘착해야 사랑받는다’, ‘기특해야 인정받는다’, ‘희생해야 받아들여진다’는 믿음들이 무의식 속에 스며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패턴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그런 믿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짧게라도 눈을 감고, 마음에 이렇게 묻는다. “지금, 너는 어떤 걸 받아들이고 싶니?” 그럴 때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내가 받고 싶은 위로, 내가 기대고 싶은 누군가의 품, 때론 단지 눈을 맞추는 다정한 시선. 나는 그것들이 내게 다가와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조용히 호흡을 내쉬며 마음을 조금 더 열어본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받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 마음 안에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었다. 받는다고 해서 빚을 지는 것이 아니고,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받았기에, 내가 기쁘기에,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마치 강물이 흐르듯이, 사랑도 풍요도 그렇게 흐르는 것임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음으로 말한다. “받아도 괜찮아. 나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3. “나는 그만한 사람이다” — 자격을 의심하지 않는 법

누군가의 호의 앞에서 마음이 움츠러들고, 작은 칭찬에도 얼떨결에 고개를 젓고 마는 순간,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 그 말은 무의식의 습관처럼 튀어나오지만, 그 뿌리는 아주 오래된 감정에 닿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뭔가를 받으면 어쩐지 죄송했고, 누군가가 나를 돕는 일조차 부끄러웠다. 마음속 어딘가엔 ‘나는 늘 더 노력해야만 받는다’, ‘나는 늘 부족하고 미완성이다’라는 오래된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 신념은 주로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충분히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칭찬을 받지 못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 더 착한 아이, 더 유능한 자녀가 되어야 했던 그 시간들이 내 안에 “넌 아직 멀었어”라는 속삭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신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대개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남들과 비교하며 ‘나는 이만큼밖에 안 돼’라고 자책하고, 성취나 결과가 있어야만 겨우 자신을 인정해준다. 그러나 존재의 자격은 어떤 성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옛날의 조건부 신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더 이루어야만 네가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믿고 있니?” 그 질문 앞에서 내 마음은 천천히 내려놓는다. 나는 그 어떤 조건이 없어도,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스스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는 데에는 또 다른 마음도 숨어 있다. 바로 ‘받으면 책임이 따라온다’, ‘받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받은 만큼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사실 우리를 고립시키고 방어하게 만든다. 그 마음의 저변에는 ‘나는 무언가를 감당해낼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자기 의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건 감당의 힘이 아니라 ‘받는 연습을 하겠다는 용기’다.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는 조금씩 변해갈 수 있는 사람이다’, ‘받아도 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문장을 자주 마음속으로 되뇌곤 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다.” 이 말은 외부의 평가를 대신하는 자기 수용의 시작이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내 안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나 스스로를 인정해주는 일부터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나는 스스로의 기준을 낮춘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마음을 높여 올렸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오늘도 나와 함께 살아가줘서 고마워”라고 인사하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상기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이는 나에 대한 신뢰는, 세상이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뿌리가 된다. ‘나는 그만한 사람이다’라는 믿음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더 이상 남의 인정이나 칭찬에 목마르지 않고,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자격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며 “이대로도 충분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사랑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사랑은 부담이 아니라 연결이 되고, 채무가 아니라 순환이 된다. 그렇게 마음은 한 겹 한 겹 풀어지고, 우리는 본래의 빛나는 자격을 되찾는다. 더는 증명하지 않아도, 더는 버거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만한 사람이다. 지금 이대로도.

4. “주는 일보다 받는 일이 더 어렵다” — 익숙하지 않은 감정의 역전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무언가를 주며 살아간다. 마음을 주고, 시간을 주고, 도움을 주며 관계를 이어간다. 특히 책임감이 강하거나 사랑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주는 일’에 능숙하다. 그런 사람들은 ‘주는 것’이 사랑이고 책임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작 ‘받는 일’ 앞에서는 얼어붙는다. 도움을 받는 일이 불편하고, 고마움을 표현받는 일이 어색하며, 무언가를 기대하지 말라고 먼저 선을 긋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감정,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곧 약함의 표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함이 드러났을 때, 거절당하거나 실망했던 기억이 마음 어딘가에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어느새 도움을 받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감정을 다독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왔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면 안 돼”,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해”, “받기만 하는 건 민폐야”라는 생각은 점차 내면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자꾸만 우리를 고립시키고, 자기 보호의 벽 안에 가두게 만든다.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한구석에 외로움과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진짜 독립은 ‘받아도 된다’는 마음까지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내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의 손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진심어린 배려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립한 사람이다. 주는 사람이 받지 못하면 관계는 일방향이 된다. 그리고 그 일방향은 결국 고립을 만든다.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받지 못하면 마음은 늘 허기진다.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받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그건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의 역전’일지도 모른다. 늘 주기만 하던 사람에게 받는 일은 낯설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하다. “이걸 받으면 나는 무언가를 되갚아야 하지 않을까?”, “받는 순간 나의 자유가 줄어들지는 않을까?” 그런 감정들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그러나 진짜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의 수치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순환 속에서 꽃핀다. 내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위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을 때, 그것은 빚이 아니라 사랑의 흐름이 된다. 받는 연습은 자기 수용의 또 다른 표현이다.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다시 말해주는 것이고,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나 자신을 더욱 믿게 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마음을 조금만 열어보면 그 속에서 놀라운 안정감을 경험하게 된다. 받는다는 것은 의존이 아니라 연결이다. 세상과의 연결, 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연결이다. 그 연결이 다시 나를 치유하고, 나의 사랑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들,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려 했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미안해하며 물러서 있었는지를. 그건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의 벽이었다. 그 벽을 천천히 허물면서 나는 배우는 중이다. 어떻게 받는지를. 어떻게 기꺼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하는지를.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다. 이제 나는 주는 일과 받는 일을 동일한 가치로 받아들인다. 둘은 다르지 않다. 둘 다 마음을 주고받는 방식일 뿐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

5. “받는 것을 허락하는 순간, 인생이 달라진다” — 마음의 새로운 흐름 만들기

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것을 배우며 자란다. 예의를 배우고, 책임을 배우고, 인내를 배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받는 법'을 배운 기억은 없다. 받기 위해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남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조건을 충족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래서일까. 누군가가 이유 없이 나를 도우려 하면 얼른 고개를 젓고,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괜히 미안하다고 말하게 된다. 이런 반응은 단지 겸손이 아니다. 그 밑에는 ‘받아도 되는가’에 대한 깊은 의문이 깔려 있다. 자격이 없다고 여긴 마음, 내가 무엇을 해주지도 않았는데 받는 게 불편하다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이 인생의 흐름을 막는다. 받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면, 우리는 인생에 들어오는 풍요조차 밀어내고 만다.받는 것을 허락한다는 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가치에 대한 선언이자,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깊은 수용이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전혀 다른 흐름을 만든다.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내 삶의 가능성 자체가 확장된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풍요를 스스로 거절하고 있었는가. 누군가 건넨 호의, 우연처럼 다가온 기회, 힘들 때 받은 작은 위로조차도 “괜찮아요”, “아니에요, 됐어요”라는 말로 밀어낸 적은 얼마나 많은가. 그 말을 할 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이걸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패러다임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삶에서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은 단지 물질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다. 누군가 나를 향해 건네는 손길은 나의 존재를 향한 인정이자 존중이다. 그 손길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무언가를 받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누군가에게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어도 괜히 움츠러들지 않고, 웃으며 “고마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삶, 그것은 단단하고 건강한 삶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더는 혼자 고립되지 않고,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내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환대하고 있다는 신호를 더 잘 알아차린다.내면에서 자격을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그것을 잡지 못한다. 풍요가 찾아와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랑이 다가와도 “나는 사랑받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스스로 물러선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능성보다 작은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받는 것을 허락하는 일은 단지 외부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괜찮아, 받아도 돼. 그럴 자격이 있어. 지금까지 충분히 애썼고, 이제는 기꺼이 누릴 차례야.” 그 말은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주고, 마음속에 멈춰 있던 흐름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받는 것을 허락하는 순간, 우리는 더 넓은 우주와 연결된다. 그동안은 내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닫힌 세계’에서 벗어나,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 이 우주는 언제나 우리를 돕고 있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기회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그 흐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이 우리를 돕고자 하고, 우리 곁에 함께 하려 한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며, 받을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크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풍요도, 사랑도, 도움도 모두 순환 속에서 더 커지는 것이지, 움켜쥔다고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걸 받아도 될까?”에서 “이걸 받아들일 용기가 내 안에 있을까?”로.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조건을 갖추는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충분한 사람이다. 그리고 충분한 사람은 기꺼이 받는다. 기꺼이 흐름 속에 자신을 놓고, 기꺼이 타인의 손길에 마음을 연다. 오늘 나 자신에게 허락해보자.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선언해보자. “나는 이제 받는 삶을 시작합니다. 더는 밀어내지 않겠습니다. 주는 것도 좋지만, 받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 순간부터, 삶은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고, 그 자격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당신 안에 있었으니까.

나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 이제는 주는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우리는 오랜 시간 ‘주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참아내고, 배려하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삶이 더 고귀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받는 일엔 늘 어딘가 모르게 미안한 감정이 따랐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선의를 베풀면 되려 불편하고, 좋은 것을 받게 되면 “내가 이걸 받아도 될까?” 하고 먼저 의심부터 했습니다. 이 모든 마음의 근원엔 ‘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패러다임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서 다가오는 풍요를 스스로 밀어냈고, 타인의 따뜻한 손길마저도 얼른 손사래 치며 외면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차릴 때입니다. 내가 받은 것이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하게 키워준다는 것을요. 누군가의 호의는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사랑의 방식이고, 삶이 건네는 풍요는 내가 살아있다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건 교만이 아니라 자기 인정입니다. 내가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더는 조건을 충족시키려 애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은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에게 따뜻해지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경계를 유지하며, 더는 억지로 맞추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습니다. 마음의 자격을 허락한 사람은 기회도, 사람도, 풍요도 모두 삶 안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 어떤 성공보다도 강력한 변화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확언이 아니라, 나의 삶을 바꾸는 선언입니다. 자격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허락하는 것이며, 이미 내 안에 있던 가능성을 삶의 무대 위로 꺼내는 첫걸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받고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시선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주고, 누구나 자신의 속도대로 받을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연결과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줄 수 있기 위해서는 받아야만 합니다. 풍요는 순환 속에서 더 커지고, 사랑은 주고받는 사이에서 더 깊어지니까요. 오늘 하루,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이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이렇게 대답해보세요. “예, 저는 이제 받겠습니다. 저는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말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지금 이 확언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일지도 모릅니다. 반복해서, 천천히, 마음을 담아 이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세요. 당신은 줄 만큼 많이 줬고, 이제는 받을 만큼 충분히 자격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확언
🌿 “나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내 가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랑도, 도움도, 풍요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