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나는 왜 받지 못한다고 믿었을까 – 자격 없는 무의식의 뿌리

ohom 2025. 6. 27. 07:03

삶의 많은 순간에서 우리는 ‘받는 것’ 앞에서 멈칫하곤 한다. 칭찬을 받을 때, 선물을 받을 때, 도움을 청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딘지 불편해하거나 괜히 미안한 마음을 먼저 앞세운다. ‘내가 뭘 했다고’, ‘괜찮은데 왜 줘’라는 말로 애써 상황을 무마하거나, 심지어 누군가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한다. 마치 내가 그걸 받을 만큼의 사람이 아니라는 듯, 내가 받으면 다른 누군가가 손해 볼 것 같다는 듯,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 자격 없음의 그림자가 스친다. 이런 반응은 단순한 겸손이나 배려의 표현이라기보다, 마음 어딘가에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오래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우리는 자주 타인을 돕고, 베풀고, 나누는 데 익숙해진다. 하지만 막상 나 자신이 받을 차례가 되면, 그 익숙함이 어색함으로 바뀌고, 기꺼이 받는다는 행위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어릴 적부터 형성된 ‘받으면 안 된다’,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라는 내면의 금기는,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삶의 선택과 인간관계 속에 영향을 끼친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대할 때조차 그 마음을 의심하거나, 내 몫을 주장해야 할 때조차 스스로를 뒷전으로 밀어내며, 결국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다. 많은 이들이 사랑받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그 사랑과 인정을 받아들이는 데는 망설임이 크다. 이유는 단 하나, 무의식 속에서 나는 여전히 자격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공부는 이 무의식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왜 나는 받지 못한다고 믿는가. 그 믿음은 언제부터 생겨났고, 어떤 순간마다 나를 가로막았는가. 그리고 이제는 그 믿음을 넘어서, 기꺼이 받고 누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나는 왜 받지 못한다고 믿었을까 – 자격 없는 무의식의 뿌리

1. 나는 왜 받지 못하는가 – 무의식의 방어 기제

어떤 사람은 사랑을 받는 순간에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누군가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거나,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줄 때,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죄책감이나 불편함이 올라온다. 마치 ‘나는 받을 자격이 없다’는 오래된 믿음이 무의식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시절 환경과 반복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어릴 때부터 "네가 참아야지", "괜찮다고 말해", "동생 먼저 챙겨야지" 같은 말들을 자주 듣고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생긴 ‘나는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념은 시간이 지날수록 ‘받는 것은 민망한 일’이라는 감정으로 변형되며 무의식의 방어 기제로 굳어진다. 받으면 미안해지고, 그 미안함은 곧 자격 없음으로 연결된다. 결국 기꺼이 베풀 줄 알면서도 누군가의 호의를 마음 편히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게 된다. 나를 위한 지출을 주저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죄처럼 느껴지고, 어떤 보상이나 인정이 주어져도 “과분하다”는 말을 먼저 꺼낸다. 이렇듯 '받지 못하는 마음'은 단순히 성격 문제가 아니라, 오래도록 억눌려온 감정의 표현이며, 나를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지금의 나는, 이 전략이 더는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그것은 내 안의 결핍을 강화시키고, 삶의 풍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왜 받는 것이 불편한가? 나는 왜 기꺼이 받을 수 없는가? 그 질문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는 '거절의 무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거절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넌 아직 안 돼”, “이건 네 몫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마음을 열고 받는 연습은, 나를 다시 사랑하는 연습과 같다. 나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고, 삶은 그것을 나에게 주고자 한다. 이제는 ‘받을 수 없다’는 방어의 패턴을 내려놓고, 나도 삶의 선물 앞에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은 말한다. “괜찮아, 이제 받아도 돼. 너는 이미 충분히 자격이 있어.” 그리고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삶은 조금씩 진짜 평화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2. 받지 않기로 한 마음이 만드는 현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지 않겠다’고 결심한 채 살아갈 때, 세상은 정말로 주지 않는 방향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풍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받을 수 없다’, ‘받아서는 안 된다’는 패러다임이 작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국 삶의 가능성마저 차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관계 속에서도, 재정적인 흐름 속에서도, 기회가 다가와도 이상하게 흘러가 버리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도움을 주려 할 때 괜히 선을 긋거나 거절하는 습관이 생기고, 어떤 보상이나 칭찬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냥 운이 좋았어요”라고 스스로를 축소시킨다. 이는 겸손의 탈을 쓴 자기부정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런 심리 구조를 갖고 살아간다. 주는 것은 익숙해도 받는 것은 불편한 사람들, 늘 타인을 우선하며 자신은 뒷전으로 밀어두는 사람들. 문제는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결국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 늘 외로운 사람으로 고립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자격 없다는 믿음은 자꾸만 자신을 작게 만들고, 그 작아진 자아는 세상의 큰 흐름과 풍요를 스스로 거절하게 된다. 삶은 우리의 내면 상태에 따라 반응한다. ‘받지 않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세상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주지 않음으로써 그 믿음을 증명해준다. ‘나는 늘 부족해’라는 마음은 진짜로 부족한 현실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단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연습이다. 받는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정, 호의, 감사, 칭찬, 기회, 사랑 등 삶의 수많은 풍요는 우리가 마음을 열었을 때만 비로소 스며든다. 받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그것들을 모두 놓치게 된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무리 사랑을 받고 있어도, 그 마음을 스스로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그 풍요는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삶의 기회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모든 가능성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스쳐가고 만다. 결국 우리가 받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지 않기로 했던 것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마음을 여는 연습, 허용하는 연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삶을 살리는 본능이어야 한다. 받지 않겠다는 결심은 이제 내려놓자. 세상은 우리가 받을 준비가 되기를, 그리고 그 준비가 진심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3. 받는 것을 허용할 때 일어나는 변화

받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에서 오는 혜택을 ‘받아도 된다’고 여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자,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지금까지는 늘 주기만 했던 사람이 ‘나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 주변의 반응도 점차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자발적으로 다가오고, 예상치 못한 기회나 제안이 생겨나며, 감사와 칭찬을 받는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고 기쁘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변화는 하루하루 삶에 새로운 색을 더해 준다. 받는 것을 허용하는 마음은 곧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자기 인정을 의미한다. 그 마음을 품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경계하지 않는다. 늘 부족함을 전제로 세상과 거래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풍요와 사랑을 맞이하는 태도로 바뀐다. 이는 마치 꽁꽁 얼어붙은 땅이 봄바람에 녹으며 생명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주기만 하던 사람이 받는 것에도 익숙해지면, 주는 것도 더 풍요로워진다. 억지로 희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유에서 비롯된 나눔이 되기 때문이다. 받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며, 의존도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이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고, 그 관계 안에서 순환이 이루어진다는 우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행위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과 배려를 통해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더 깊이 성장할 수 있다. 혼자 다 해내는 삶이 꼭 강한 것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받음과 줌이 균형을 이루며 순환할 때, 우리는 진짜로 살아있다고 느낀다.

받는 것을 허용할 때 생기는 변화는 점점 넓어진다.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며, 관계 안에서 진짜 소통이 가능해진다. 어떤 사람은 처음으로 “나는 이게 필요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고, 어떤 사람은 “고마워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나도 받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나를 작게 만들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삶 안으로 펼쳐 놓을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이 받는 것을 허용할 때 삶에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다.

4. 무의식에 남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습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는 늘 무의식이 깊게 작용하고 있다. 내가 하는 선택, 반복되는 감정 반응, 상대의 말에 유난히 민감해지는 순간들 속에는 과거에 형성된 패러다임이 작동하고 있다. 예컨대 ‘나는 도움을 받으면 안 돼’, ‘나는 혼자 해야만 해’, ‘받는 건 민폐야’ 같은 무의식적인 믿음들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배려하거나 돕겠다고 할 때조차 거절하거나 어색해하며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나는 항상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라는 왜곡된 자아상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이런 패러다임은 단순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정서적 깊이에서 형성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무의식적 신념이기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첫걸음은 바로 ‘자각’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받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누군가 호의를 베풀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단순한 질문 같지만 이 안에는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 이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다 보면,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튕겨냈던 말들, 고마운 마음보다는 조급하거나 미안했던 순간들, 그것이 바로 내가 가진 ‘자격 없음’의 패러다임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변화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선택'이다. 예전처럼 피하지 않고, 한 번만이라도 그 마음을 받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도와줄게요”라고 했을 때, “괜찮아요” 대신 “고마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부끄럽고, 심지어 죄책감이 올라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피하지 않고 경험하는 것, 그게 바로 무의식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습이다. 이 과정은 마치 마음의 길을 새로 내는 것과 같다. 익숙한 길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보는 것, 그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무의식을 바꾸는 일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굳어온 내면의 믿음을 천천히 느슨하게 만들고, 새로운 경험으로 덮어가는 반복의 과정이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자유로워진다. 더 이상 받는 것이 무겁지 않고, 미안하지 않으며, 주는 것도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된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나는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 안에 뿌리내리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 연습은 단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나를 전혀 다른 삶으로 이끄는 깊은 내면의 전환이 된다.

5.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격, 지금 여기의 나에게

자격 없는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내면의 그림자는 단순히 받는 것을 꺼리는 성향을 넘어, 삶 전체를 제한하는 틀로 작용한다.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더 이상은 바라면 안 돼”, “나는 늘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가 삶을 온전히 누리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목소리가 진실처럼 들린다는 데 있다. 결국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꿈꾸지 않고, 변화에 주저하며, 그저 주어진 몫에만 안주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공부는 그 패러다임의 틀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다. 자격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인정할 때 비로소 효력을 발휘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존재만으로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어.” 이 문장을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연습은 자격을 되찾는 강력한 실천이다. 처음에는 의심이 들고,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격은 조건을 갖춰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 자체에 깃들어 있는 내면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마음공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내가 자격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이미 자격 있는 존재였음을 기억해내는 일’이다.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첫걸음은 ‘지금 여기’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불안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나의 호흡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은 존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삶의 흐름 또한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조건 없이 나를 믿어주는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신뢰는 삶이 보내는 선물들을 더욱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으로 확장된다. 받는다는 것은 물질이나 도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회, 사랑, 인정, 기쁨, 작은 행운들까지도 포함된다. 그런 것들이 내게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어야,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지속된다. 반대로, 스스로를 자격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 다가와도 받아들일 수 없고, 오히려 스스로 거절하게 된다. 그래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힘은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깊은 자기 수용에서 비롯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확언을 마음속에 새겨보자. 그 문장을 붙잡고 살아갈수록, 삶은 점점 더 풍요로운 방식으로 응답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받고 있었던 것을 몰랐을 뿐이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할 때, 비로소 삶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서게 된다.

받을 자격을 기억해내는 마음공부의 힘

우리는 종종 삶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받는 일에 스스로를 인색하게 만든다. 그것이 사랑이든, 돈이든, 칭찬이든, 인정이든 —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조심스럽다. "이걸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 "혹시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이 되진 않을까?", "받았으니 이제는 갚아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생각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엔 ‘나는 자격이 없다’는 오래된 패러다임이 도사리고 있다. 자격이 없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주는 것에는 익숙해지고 받는 데에는 점점 서툴러진다. 마음공부는 바로 그 믿음을 되짚는 일이다. 자격 없는 무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관찰하고, 그것이 어떻게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움츠러들게 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다시, 지금 여기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정말 자격이 없을까?”, “내가 이토록 노력하고 살아온 시간을, 내가 품어온 따뜻함을, 내가 이겨낸 외로움을,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도 괜찮을까?” 받는다는 것은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행위다. 마음공부는 단순히 감정을 다스리는 기술을 넘어서,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지키고 살리는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학원에 가지 못하고, 돈을 날릴 뻔한 순간에 다시 중심을 잡고 돌아설 수 있었던 힘도,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던 힘도, 모두 마음공부가 차곡차곡 쌓아온 내면의 토대에서 비롯된다. 자격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무한 경쟁이 아니라,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이미 충분한 존재로서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당신도, 나도, 우리는 누구나 받는 자격이 있다. 사랑받을 자격, 쉬어갈 자격, 실패할 자격, 다시 시작할 자격,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누릴 자격. 그 자격을 되찾는 길이 마음공부의 진짜 성과이며,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받는 연습’을 통해 완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