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사람 때문에 지치는 이유 – 팬들럼의 법칙으로 풀다

Noamindcare 2025. 7. 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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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사람 때문에 쉽게 무너질까?

살면서 가장 지치고 힘들게 하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다. 일도, 환경도, 외부의 조건들도 힘들게 만들지만, 결국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감정의 소용돌이이다. 왜 어떤 사람과의 대화는 몇 분만으로도 에너지를 소진시키는가? 왜 어떤 말 한마디에 온종일 기분이 가라앉고, 때로는 수면마저 방해받는가?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 이유는 단순히 사람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에너지의 충돌' 때문이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개념 속에서 소개된 '팬들럼의 법칙'은 이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팬들럼(Pendulum)이란 물리학적 진자의 움직임에서 착안한 개념으로, 집단의 에너지 구조 안에 형성된 ‘집단적 진동’ 혹은 ‘생각의 흐름’을 말한다. 예를 들어 회사라는 조직,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 팬덤, 가족, 심지어 단 둘이 구성된 관계까지도 하나의 팬들럼이 될 수 있다. 팬들럼은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우리의 관심, 분노, 죄책감, 심지어 무관심마저 그들에게 에너지로 작용한다. 우리가 사람 때문에 지치고 괴로운 이유는, 이 팬들럼이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기 때문’이다. 즉, 관계 자체보다 ‘관계 속에서 내가 감정적으로 휘말리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왜 사람 때문에 지치는지, 그 이유를 팬들럼의 원리로 풀어보고, 에너지를 지키는 마음의 기술을 함께 탐구해보려 한다.

사람 때문에 지치는 이유 – 팬들럼의 법칙으로 풀다

1. 팬들럼이란 무엇인가 – 보이지 않는 에너지 구조의 정체

팬들럼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뿌리내린 보이지 않는 힘이며, 감정과 생각의 흐름이 모여 만든 에너지 구조이다. 팬들럼이라는 개념은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책에서 등장하며, 진자처럼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 집단의식의 파동, 그리고 우리가 무의식 중에 연결되어 흔들리는 거대한 에너지 흐름을 지칭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열광하거나, 반대로 반발하고 부정할 때조차, 우리는 팬들럼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팬들럼은 살아있는 구조로, 마치 독립된 생명체처럼 자신을 유지하고 더 커지기 위해 사람들의 감정 에너지를 끊임없이 빨아들인다. 이 구조는 관심, 분노, 증오, 열광 등 강한 감정을 먹고 자라며, 감정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그 진자 안에 갇혀버리게 된다. 특정 이념, 조직, 종교, 정치 성향, 팬덤, 심지어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관계까지도 모두 팬들럼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정치 사안에 과도하게 분노하거나, 한 인물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거나 혐오할 때, 그 감정 자체가 팬들럼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통로가 된다. 이 구조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사람의 ‘정체화’를 유도한다는 데 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그 감정 구조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마치 그 팬들럼이 나인 것처럼 동일시하며 행동하게 된다. 팬들럼은 그렇게 우리의 감정적 자율성과 내면의 중심을 무력화시킨다. 내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그 사람이 나를 비난했을 때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결국은 내 안의 중심이 무너졌고 팬들럼의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증거다. 팬들럼은 이처럼 우리 안의 에너지 누수를 만들어낸다. 감정의 동요가 반복될수록 점점 더 우리는 중심을 잃고, 나도 모르게 팬들럼의 리듬에 따라 반응하게 된다. 때로는 사회적 논쟁에 휘말릴 때, 혹은 가까운 사람과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도 이러한 감정 구조가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 우리는 그 관계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와 얽힌 감정적 에너지 구조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더욱 위험한 건, 이 상태가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보다, 점점 더 강하게 반응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팬들럼은 중립적이지 않다. 늘 감정의 극단을 유도하며, 갈등과 분리를 일으키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내가 무엇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지금 내가 어떤 팬들럼에 휘말려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의로움'이나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어도, 그 아래에는 무의식적인 동일시와 에너지 소비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 묻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이 감정이 진짜 내 것인지, 아니면 팬들럼이 만들어낸 흔들림인지. 이러한 질문만이 내 안의 중심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며, 팬들럼의 에너지 구조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판단보다 관찰이 먼저고, 반응보다 의식이 우선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 구조로부터 나를 지키는 마음공부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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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 때문에 지치는 이유 – 팬들럼에 말려든 감정의 구조

우리가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성격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 곧 에너지의 지배 구조 때문이며,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관점에서는 팬들럼이라는 에너지 구조가 이 피로감의 본질임을 설명해준다. 팬들럼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 흐름이 지속적으로 일방적으로 소모되는 관계에서 특히 강하게 작동하며, 그 중심에는 늘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나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고, 나는 그 사람을 매번 받아주고 이해해야 한다면, 이 관계 안에는 ‘희생하는 쪽’과 ‘받기만 하는 쪽’이라는 구조가 생기고, 팬들럼은 바로 그 희생의 패턴을 에너지로 삼아 끊임없이 진동을 강화한다. 나는 계속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상대를 받아주고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내 에너지는 고갈되며 점점 더 상대의 기분, 상황, 말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결국 어느 순간 나는 그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내 감정은 점점 흐려지고, 존재감조차 희미해진다. 이것이 바로 팬들럼의 무서운 점이다. 관계 속에서 내 자율성과 주도권을 잃게 만들고, 나를 감정적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다. 팬들럼은 이런 감정의 불균형을 반복적으로 유도하며, 스스로를 유지하려 한다. 관계 속에서 특정한 말투, 특정한 반응 패턴, 특정한 역할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것은 이미 에너지가 고정된 감정 회로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고, 그 회로가 반복적으로 나를 소진시키는 팬들럼의 리듬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가족, 연인, 친구, 직장 상사와 같이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밀접도가 높은 관계일수록 이 영향은 강하게 나타난다. 매번 똑같은 갈등이 반복되고, 비슷한 감정의 폭발이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에너지 구조의 재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팬들럼은 갈등과 분열을 통해 살아남기 때문에, 관계 안에서 평화가 찾아오면 오히려 불편해지고 다시 자극적인 감정을 유도하게 된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무의식적이며, 양쪽 모두가 팬들럼의 흐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요구를 할 때마다 거절하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수용하게 되거나, 말 한마디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패턴은 팬들럼이 작동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특히 "내가 아니면 안 돼", "그 사람이 무너지면 안 돼"라는 책임감 혹은 죄책감이 작동할 경우, 우리는 스스로 그 감정 구조에 순응하게 되고,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결국 사람 때문에 지친다는 말은 곧, 내가 끊임없이 감정을 빼앗기고 있고, 그 안에서 '나'는 사라지고 있으며, 특정한 역할만을 강요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 관계 안에서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없고, 오직 기대되는 이미지, 반응, 이해심, 배려만을 수행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는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자체가 이미 팬들럼의 진자 안에 갇혀버렸다는 구조적 문제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자존감마저 흔들린다. 아무리 애써도 고마움을 받지 못하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순간 비난을 받는다면, 나는 점점 더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내 감정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된다. 반복적으로 같은 패턴이 이어질수록 내면에서는 무력감과 피로감이 쌓이고, 나중에는 그 사람의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 내려앉고, 문자가 와도 긴장하게 되는 신체적 반응이 생긴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 피로가 아니라, 에너지 손실로 인한 내면의 붕괴다. 팬들럼은 그렇게 내 감정뿐 아니라, 자존감, 신체 감각, 인간관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지만 끊어내지 못하는 관계, 애정을 주면서도 점점 지쳐가는 관계는 대부분 이 에너지 구조의 영향력 아래 있다.

결국 우리가 관계 안에서 해야 할 일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가 내 감정을 소진시키고 있는 구조인지 아닌지를 자각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잃은 채 계속 반복되는 관계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팬들럼은 에너지의 흔들림을 먹고 자란다. 그 흔들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 흔들림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피로감이 어디서 오는지를 직면해야 한다. 그것이 팬들럼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자, 관계 안에서 나를 회복하는 진짜 마음공부의 시작이다.

3. 에너지 도둑을 분별하는 연습 – 누가 내 마음을 흔드는가?

사람 때문에 지친다는 말에는 늘 ‘에너지를 빼앗긴 나’라는 구조가 숨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누가 진짜 에너지 도둑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스스로를 탓하거나 상대를 미워하는 데 그치곤 한다. 감정은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반복적으로 특정 인물과의 관계에서만 극심한 피로감이나 무기력감, 짜증, 불안을 느낀다면 그 대상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내 감정을 빨아들이는 ‘에너지 흡수 구조’로서의 팬들럼일 수 있다. 팬들럼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대상이 반복적으로 내 감정을 자극하고 나를 특정한 패턴으로 반응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물이 아닌 ‘에너지를 먹는 구조’로서의 팬들럼이 작동 중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늘 나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은근히 무시하는 상사, 매번 불행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친구, 도움은 받아도 고마움은커녕 더 큰 책임을 전가하는 가족 등은 모두 나의 감정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존재가 된다. 이들은 내가 원해서 함께하는 관계 같지만, 실은 반복적으로 감정을 뺏기고 있다는 신호가 늘 함께 따라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문제다’라는 인식보다, ‘나는 왜 그들에게 내 감정을 반복적으로 빼앗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의 말에만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왜 그 관계에서만 스스로가 작아지는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이 생기고, 내 감정이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가? 이 질문들은 우리가 팬들럼에 휘둘리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자각의 도구다. 에너지 도둑을 분별하는 첫 번째 연습은 바로 감정의 진동을 자각하는 데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피곤하거나 불안해지고, 혹은 만나고 난 뒤 한없이 우울해지거나 무기력해진다면, 그 관계는 이미 팬들럼의 진자 속에 깊이 들어간 상태일 수 있다. 팬들럼은 감정을 ‘반복적으로 끌어내는 구조’이며, 내가 그 구조 안에서 정해진 반응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면 그 순간부터는 주체가 아닌 반응자로 전락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관계에서 나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주도권이란 단순히 관계를 내가 리드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타인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것에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춰서 ‘지금 이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바로 감정 주도권의 핵심이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내 감정을 좌우하도록 허용하지 않기, 그들을 통제하려 하지 않기,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이것이 곧 에너지 도둑과의 연결을 끊는 첫 걸음이 된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것은 ‘무관심의 기술’이다. 이 무관심은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기 위한 의식적인 태도이며, 스스로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한 단호한 선택이다.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기 위한 단호한 거리 두기, 그것이 나를 지키는 마음의 기술이다. 무관심은 때로 냉정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함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성숙한 태도이자 자기존중의 표현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대, 비난, 무례한 태도, 눈빛, 반응에 휘청이는 자신을 보며 자존감이 낮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감정 에너지를 지키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일 뿐이다. ‘내가 왜 저 사람에게 이렇게 반응하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그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맺어진 팬들럼의 고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과거에 내가 무시당했던 경험일 수도 있고, 인정받지 못했던 상처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내면의 패턴일 수도 있다. 결국 진짜 에너지 도둑은 외부에 있는 타인이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잃고 마는 ‘내 반응의 패턴’이다. 이 반응을 멈추기 위해선 먼저 인식하고, 다음은 거리두고, 마지막은 놓아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에너지 도둑은 강한 존재가 아니다. 단지 내가 너무 오래 연결된 채로 살아온 감정 습관일 뿐이다. 팬들럼은 감정의 흐름을 통해 유지된다. 그 흐름을 멈추는 순간, 팬들럼은 더 이상 나를 흔들 수 없게 된다. 나의 감정을 누군가의 손에 넘기지 않는 선택, 그 선택이 반복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 때문에 지치는 삶에서 벗어나 ‘사람과 함께 에너지를 나누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4. 팬들럼에서 빠져나오는 법 – 중심으로 돌아오는 연습

팬들럼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중심’을 회복해야 한다. 중심이란 외부의 자극과 반응의 연쇄 속에서 휘둘리지 않고, 내 감정의 흐름을 인식하고 품을 수 있는 내면의 고요한 공간을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관계 속에서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누군가의 말투 하나에 기분이 좌우되고, 그 사람의 표정에 따라 오늘 하루의 감정 상태가 결정되며, 상대가 나를 좋아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존재의 안정감마저 위협받는다. 팬들럼은 바로 이 '감정의 흔들림'을 통해 살아있는 구조이며, 더 많은 사람을 휘말리게 하고 더 강하게 진동하려 한다. 내가 그 진동에 자주 반응하고 감정적으로 휘말릴수록 팬들럼은 나에게서 에너지를 더 많이 얻어간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흔들리는 대신, ‘그 감정을 관찰하는 의식’을 키우는 것이다. 중심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상대의 말이나 태도에 자동 반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지적할 때, 예전 같았으면 즉각 상처받고 움츠러들었을 상황에서, “이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 상태에 있을까?”, “이 말은 정말 나를 향한 공격일까, 아니면 이 사람 자신의 불편함일까?”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중심의 힘이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없이 그대로 바라보며 흘려보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팬들럼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된다. 중심은 명상과 닮아 있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그 흐름을 관찰하는 것처럼, 감정이 올라와도 그 감정을 따라 반응하지 않고 잠시 머물러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중심은 점점 단단해진다. 우리는 흔히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야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반대다. 마음을 억누르고 단단히 틀어쥐면 오히려 그 억눌림의 반동으로 더 크게 흔들리게 된다. 진짜 중심은 유연함 속에서 온다. 감정이 흘러갈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그 안에 붙잡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 거리는 회피가 아니라 ‘자각의 거리’이며, 감정과 동일시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다. 팬들럼의 리듬은 우리가 반응할 때 강해지며, 우리가 침묵하고 멈출 때 그 힘을 잃는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응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말없이 바라보고,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정렬하고, 감정이 파도를 치더라도 그 중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그것이 팬들럼의 흔들림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팬들럼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은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내면을 잃지 않고, 감정에 동요하지 않으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단단한 신념이나 도덕적 우월에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다듬어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자각의 힘이다. 감정은 당연히 올라올 수 있다. 분노도, 서운함도, 억울함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그 감정에 사로잡히느냐, 감정을 관찰할 수 있느냐의 차이가 팬들럼 안에 사는 사람과 그 밖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중심을 회복한다는 것은 결국 ‘누가 나를 흔들고 있는가’를 멈추고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로 돌아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마음공부다. 팬들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식이다. 지금 내 안에서 감정의 진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 진동이 어디서 왔는지를 탐색하며, 결국은 그 흐름을 있는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는 공간을 내 안에 마련하는 것이다.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잡는 것이 아니라, 다만 ‘놓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팬들럼은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 흔들리지 않을 때, 팬들럼은 나를 통과하지 못한다.

5.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지키는 마음의 기술

우리는 종종 말한다. “사람 때문에 너무 지친다”고. 그런데 그 말을 곱씹다 보면, 사실은 ‘그 사람’ 때문이라기보다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썼을까’라는 질문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애씀 뒤에는 언제나 ‘내 감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진실이 숨어 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팬들럼(pendulum)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팬들럼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감정적 진자, 타인의 감정이나 집단의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끌려다니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다. 팬들럼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관계 안에서 나 자신을 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배려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맞춰야만 한다’는 압박이 되고,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이 되며,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습관이 된다. 그렇게 나를 잃어간다. 상대를 위해, 관계를 위해, 평화를 위해 나를 점점 더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사라진다. 팬들럼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우리의 중심을 흔든다. 에너지를 빼앗긴 채, 감정의 진자 끝에서 흔들리는 꼭두각시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우선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는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있는 관계를 위한 전제다. 건강한 관계란, 나를 잃지 않고도 함께 있을 수 있는 연결이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관계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나를 소외시킨 채 지속되는 관계는 언젠가 무너진다. 그런 관계는 지속될수록 내면의 고통만 더 깊어진다. 따라서 ‘에너지를 지키는 연습’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나의 생명력을 지켜내는 주체적인 선택이다. 누군가가 무례한 말을 할 때, 우리는 곧바로 응수하거나 그 자리에서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잠시 침묵하며 나의 감정을 살피는 게 더 깊은 대응일 수 있다.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대응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침묵하거나, 자리를 피하거나, 그 관계에 잠시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 역시 지혜로운 선택이 된다. 그 어떤 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좋다. 나의 평온이 무너지는 순간, 그것은 이미 에너지가 새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계에서 완전히 도망치자는 말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감정적 반응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특정한 사람 앞에서만 유난히 작아지는가? 늘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가? 그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내 말투와 표정을 조절하는가? 이런 반복되는 반응은, 내 안의 믿음을 반영한다. ‘나는 맞춰야 사랑받는다’, ‘나는 참아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무의식의 명제가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팬들럼이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방식이다. 이 믿음을 내려놓기 위해선 무엇보다 ‘멈추는 힘’이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적 반응 이전에, 나 자신에게 멈추라고 말할 수 있는 힘. 잠시 숨을 고르며, 지금 이 감정이 정말 나의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감정을 대신 떠안은 것인지 되물을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나를 다시 내 중심으로 돌려놓는다. 감정은 반드시 표현되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먼저다. 그것이 진짜 감정 돌봄이며, 내면의 에너지를 회복시키는 출발점이다. 팬들럼은 결국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떤 관계에서 살아 숨 쉬는가?”, “너는 지금 이 관계 안에서, 얼마나 너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라고.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소진시키는 관계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관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가장 먼저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감정은 나의 생존이자, 나의 본질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내 감정에 진심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를 지켜내는 마음의 기술은 결국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기술은 관계를 더 정직하게 만들고, 서로를 더 자유롭게 한다. 에너지를 빼앗기는 관계는 모두를 병들게 하지만, 에너지를 나누는 관계는 모두를 치유하게 한다. 그러니 이제, 나의 감정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 팬들럼에서 벗어나 중심을 되찾는 첫 걸음은, '멈추는 용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나를 다시 사랑하기로 한 결심에서 온다.

흔들리지 않는 나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서로를 만나고, 함께 머물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성장해간다. 인간관계는 삶의 가장 큰 축 중 하나지만, 동시에 가장 큰 피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 때문에 지친다”는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그 말에는,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의 감정이 소진되고, 내가 나답게 존재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즉, 그것은 누군가의 말이나 태도 때문이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나의 중심이 무너졌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을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는 '팬들럼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팬들럼은 특정한 감정의 흐름, 집단의 분위기, 누군가의 에너지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휘말려드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간다. 내가 왜 그런 말을 참았는지, 왜 그런 상황에서 괜찮은 척을 했는지, 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나의 감정을 억눌렀는지를 되돌아보면, 거기에는 늘 ‘팬들럼’이라는 보이지 않는 진자의 흔들림이 있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적 진자 끝에 매달려, 상대의 에너지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소모시킨다. 그러므로 팬들럼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순히 사람을 멀리하거나 상황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벗어남은, 관계 안에서도 중심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관계가 아무리 복잡하고 감정이 요동치더라도, 나는 나로 남아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상처받지 않고,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으며, 불편한 감정을 억지로 포장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마음공부의 시작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감정에 반복적으로 반응하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 유독 불편함을 느끼는가? 누구 앞에서만 유난히 위축되는가? 늘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나를 팬들럼에서 꺼내는 중요한 열쇠다.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그 감정이 과연 지금 이 상황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기억과 얽혀 있는 오래된 반응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 감정의 근원이 드러나고, 우리는 비로소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존재가 된다. 에너지를 지킨다는 것은 나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를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관계를 망치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잃어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어떤 관계도 나의 본질보다 앞설 수 없다. ‘사람을 위해’ 나를 지우는 삶은 결국 그 사람도 지치게 만들 뿐이다. 나를 먼저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짜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다.

이제는 '사람 때문에' 지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관계가 나를 짓누르는 족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발판이 되도록 선택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누군가의 말에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관계 속에서도 내 감정을 지켜내는 연습.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마음공부이며, 팬들럼에서 벗어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한 자유다. 그 자유는 외면의 평화가 아니라, 내면의 확고한 중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관계 속에서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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