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읽는 감성

내 마음에 다시 말을 건네다 – 마음공부와 블로그로 이어진 길

Noamindcare 2025. 8. 3.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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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의 길 위에서 만난 '나'

삶에는 예고 없이 방향이 틀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정해진 길을 걸으며 앞으로만 나아가리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너무나도 익숙했던 일상이 문득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 순간은 조용하고도 단호하게 내 삶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나에게는 '퇴직'이 그랬다. 선택이 아니라 필연처럼 느껴졌고, 두려움과 함께 안도감도 찾아왔다. 나는 오랜 시간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맡은 바를 다하며, 책임을 다하며. 특히 고객 응대를 하는 일은 매순간이 생생한 배움이었다.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 따라 누군가의 하루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단순히 업무 이상의 경험이었다. 어느 날은 불만으로 가득한 얼굴이 따뜻한 인사 한 마디에 누그러지고, 또 어느 날은 진심 어린 경청이 상대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말'이라는 도구가 가진 놀라운 힘을 몸으로 익혀갔다. 그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강의'라는 또 다른 길로 나를 이끌었다. 그건 내가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었던 분야였고, 동시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을 깨우는 계기였다. 교육원 외래강사로 위촉된 이후, 나는 몇 년간 꾸준히 출강을 이어갔다. 첫 강의는 떨림으로 시작됐지만, 어느새 그 떨림에 적응해가는 나를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하는 기쁨이 커졌다. 단상 위에 서 있을 때의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함께 호흡하며 공감하는 그 시간들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고자 했던 의미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강의 경연대회를 준비하던 날들이다. 출퇴근길 차 안에서 원고를 녹음하며 끊임없이 연습했다. 그렇게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게만 들리던 내 목소리가,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한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밤이면 딸을 청중 삼아 발표 연습을 했다. 때론 내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다시 원고를 붙들고 앉는 나를 보며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 열정은 결국 ‘1등’이라는 값진 결실로 돌아왔다. 그것은 단순한 순위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진심을 다해 해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뜨겁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비록 강단에 서는 순간만큼은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다시 창구로 돌아오는 길은 어딘지 모르게 좁고 막막하게 느껴졌다. '창구 직원'이라는 직함이 주는 한계는 생각보다 깊었다. 조직은 나의 열정과 잠재력을 인정해주기에는 너무 바빴고, 나는 점점 그 틀 안에서 숨이 막혀갔다. 결국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퇴직을 결심했다. 그 결심은 단순한 ‘그만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첫 걸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내 삶의 새로운 여정. 그것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길이었다. 나는 그 길에 ‘마음공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내면 깊숙한 감정과 마주하고, 나조차 몰랐던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 그것은 때때로 아프고 낯설었지만, 그 어떤 승진이나 인정보다 더 강하게 나를 붙들어주는 힘이 되었다. 마음공부는 내가 다시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었고, 오랜 시간 타인의 기대 속에서 지쳐버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연습이었다. 삶이 예고 없이 방향을 틀어도 괜찮다고, 그 틀어짐이 때로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시작이라고, 나는 이제 믿게 되었다.

내 마음에 다시 말을 건네다 – 마음공부와 블로그로 이어진 길

1. 강의에 몰두했던 시간, 그리고 마음이 전한 신호

퇴직 전, 나는 언제나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싶다’는 갈망을 품고 있었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 그리고 그 일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라고 믿었다. 나는 '말의 힘'을 믿었다.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방향을 틀게 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강의’가 좋았다.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진동을 전하는 일, 말의 온기를 전하는 일이 내게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강의 경연대회를 준비하던 시간은 내 안의 열정을 가장 뜨겁게 태웠던 시기였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가볍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말 한 마디, 한 문장에 힘을 실기 위해 몇 번이고 녹음하고, 다시 들으며 어투와 속도, 감정의 농도를 조정했다. 출퇴근길 차 안은 곧 나만의 연습장이 되었고,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내 목소리가 점차 익숙하게 다가왔다. 어색한 억양에 멈춰 서기도 했고, 때론 스스로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날 만큼 몰입한 날도 있었다. 밤이면 딸아이 앞에서 강의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다. 나는 청중이 가득한 강의장에 서 있다는 상상을 하며, 진심을 다해 말했고, 딸은 묵묵히 들어주는 나의 유일한 청중이 되어주었다. 그날 강의에서 나는 스타벅스를 예로 들었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 그 안에는 커피 이상의 것이 있었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만의 라이프스타일. 고객의 욕구를 먼저 알아채고, 그것을 커피 한 잔에 담아 위로처럼 내어놓는 감성 마케팅. 바쁜 일상 속,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주문을 마치면 바리스타는 조용히 고객의 이름을 물어본다. 그리고 컵에 그 이름을 적는다. 음료가 완성되면,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대신 “노아님,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고 부른다. 그 짧은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사람들은 어쩌면 커피보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에 더 깊은 위로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 속,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이름을 기억해주는 경험. 그것은 '당신은 이 공간에서 단지 번호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작지만 분명한 메시지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스타벅스는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는 작은 배려 하나로, 단지 커피를 파는 브랜드를 넘어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커피 한 잔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이 정서적 경험은, 바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든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감성 마케팅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 테레사 수녀님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한 청년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수녀님께 이렇게 말하자, 수녀님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그 사람의 좋은 점부터 보려고 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하기 전에, 제가 먼저 그 사람을 좋아하죠. 당신도 먼저 사랑해보세요. 그러면 어느새, 그들도 당신을 사랑하게 될 거예요.” 이 이야기는 얼핏 보면 스타벅스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고객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그 배려와 닮아 있었다. 상대가 나를 알아주기 전에, 내가 먼저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 그 작은 선의와 관심이 결국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이 전해지게 만든다. “브랜드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진심을 전하고 싶다면 먼저 다가가야 하고, 마음을 얻고 싶다면 먼저 마음을 써야 한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태도, 감정을 미리 읽고 건네는 손길, 그것이 결국 사람을 움직이고, 관계를 살리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된다. 감명을 받거나 감동을 느끼고, 마음 깊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 우리 몸에서는 ‘다이돌핀’이라는 특별한 호르몬이 생성된다. 이 호르몬은 일반적인 엔돌핀보다도 400배나 강력한 힘을 지닌다. 다이돌핀은 스트레스를 씻어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해독제이자, 진심이 통할 때만 분비되는 마음의 보상이다. 그래서일까. 그날의 강의는 지식 전달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생생한 감정의 장이었다. 그 순간 강의실 안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 느껴졌다. 강단에 선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에 파동 하나를 전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에 뭉클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동의 순간이 지나자마자 내 마음엔 설명하기 힘든 허기짐이 밀려왔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성취감은 분명 있었지만, 정작 내 안은 어딘가 비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따뜻한 박수와 반응이 남긴 여운 뒤로, 현실은 언제나처럼 차가웠고, 나는 다시 일상이라는 이름의 무게 속으로 조용히 걸어들어가야 했다.  강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면, 누군가는 말없이 “지금은 강의보다 창구가 먼저”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열정의 잔불이 식기도 전에 현실은 차갑게 나를 다시 끌어당겼다. 그때는 몰랐다. 왜 그렇게도 성취감이 큰 순간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했는지. 왜 밤이면 고요한 방 안에서 작은 허탈함이 불쑥 찾아왔는지.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안에서 아주 작고 조용한 신호들이 시작되던 시점. 너무 미세해서 지나칠 수도 있었던 마음의 목소리들이, 일상의 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속삭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일까?’ ‘나는 지금, 누구의 기대를 따라 살고 있는 걸까?’ ‘이 열정은, 왜 자꾸 외로워지는 걸까?’ 처음엔 하나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곧 하나의 방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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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밀크티 한 모금, 그리고 떠오른 지난날의 나

퇴직 후의 삶은 자유로웠다. 더 이상 아침마다 알람에 쫓기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의 기대에 나를 맞출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어딘가는 자꾸만 비어 있는 듯했다. 분명 자유를 원했는데, 막상 찾아온 여유는 때때로 공허함이라는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그 공허함이 짙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안산 중앙동을 걷다 작고 조용한 밀크티 가게를 발견했다. 대만인이 운영하는 그 가게는 마치 시간을 천천히 들이마시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시끄러운 음악도, 정신없는 주문도 없이, 말없이 조용히 밀크티를 제조하는 사장님과 몇 개의 작은 테이블만 놓인 아담한 공간. 한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밀크티를 한 잔 주문했다. 이따금 들어오는 햇살과 잔잔한 조용함, 그리고 사장님의 움직임마저도 어쩐지 ‘마음이 쉴 수 있는 틈’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건네받은 한 잔의 시원한 밀크티. 첫 모금에 코코넛의 감미로운 향이 코끝을 스쳤고, 혀끝에 닿은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한순간에 기분을 끌어올렸다. 바깥의 더위는 잊혔고, 그 안의 고요함 속에서 마음이 하나씩 정돈되어 갔다. 몸이 먼저 이완되었고, 이어 마음도 살며시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오래전 강의하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딸아이 앞에서 대사 한 줄을 놓칠세라 수십 번씩 반복하던 나, 교육원 외래강사로 위촉되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설레던 그날, 출퇴근 자동차 안에서 끊임없이 녹음한 원고를 듣고 또 들으며 자신을 단련하던 그 시간들. 그 모든 힘과 열정이 한 방향으로 응축되어 있었고, 나는 그때 그 순간만큼은 어떤 잡생각도 없이 그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마치 밀크티 한 모금이 그 기억을 조용히 끌어올려준 듯했다. 그 달콤함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조용히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준 것이다.
밀크티를 마시는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강단 위에 서 있지 않지만, 그 열정과 떨림, 그리고 진심을 다해 몰입했던 나의 에너지는 여전히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만 그것을 잊고 있었을 뿐. 그날 이후, 나는 가끔 그 가게를 찾는다. 특별한 대화 없이도 위로받는 공간, 한 잔의 밀크티가 다시 삶의 온도를 조절해주는 그곳. 때로는 그런 작은 감각 하나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3. 블로그라는 또 다른 무대, 마음공부를 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픔의 뿌리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기도 전, 세상의 흐름도 잘 모를 때쯤,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당시 나는 첫 직장에 갓 들어간 철없는 신입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버거워 출근길마다 울컥했고, 회사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듯 말하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셨다. “그만둬라. 네가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그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현실적인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달만 더 다녀보자. 그때도 힘들면 그만두자.” 그래서 나는 또 한 달을 견뎠다. 달력을 세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바로 그 한 달 사이, 아버지는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준비할 틈도 없었다. 너무 빨랐다. 지금도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철없던 나를 아버지는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내가 그때 정말 그만두었다면,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하루만이라도 더,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 있었을까. 너무 평범했던 일상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토록 흔하게 흘리던 눈물과는 전혀 다른, 가슴 깊이에서 올라온 통곡이었다. 지나고 보면, 그 슬픔을 가슴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오랜 시간 ‘강의’라는 무대에서 살아왔다. 퇴직 후에도 나는 교육원에서 강의를 이어갔다. 주제는 심신힐링, 마음과 몸을 다독이는 이야기들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닿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울림이 될 수 있는지, 그 무대 위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깊이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나의 무대를 만들게 되었다. 바로, 블로그라는 이름의 조용한 무대였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공부한 내용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공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블로그는 나의 마음공부가 깊어지는 또 다른 통로가 되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나는 매일, 한 줄 한 줄에 마음을 실어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와 조용히 마주 앉는 시간이다. 지나간 감정을 헤아리고, 놓쳐버린 마음을 다시 품는 시간. 그렇게 글은, 내 안의 목소리를 천천히 깨워낸다.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아이와 마주 앉아, 그 아이의 울음과 침묵, 말 없는 외침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시간.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토닥이며, 천천히 흘려보내는 따뜻한 위로의 공간이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억눌렸던 마음은 조금씩 풀어지고,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진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글은, 내 안의 목소리를 천천히 깨워낸다.

4. 마음공부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다

 

사실 처음 마음공부를 시작했을 땐, 단순히 힘든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나조차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시기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고,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강의를 하며 문득,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울림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느꼈다. 하지만 그 감동은 어쩌면 한순간의 반짝임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바쁘게 흘러가던 일상이 잠시 멈췄을 때, 나는 조용히 내면과 마주하게 되었다.그리고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인정받고 싶어 했고, 사랑받고 싶어 했다. 겉으로는 늘 괜찮은 척, 강한 척했지만, 속마음은 너무도 연약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강의를 통해 사람들과 진심으로 교감하는 순간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 울림을 말로만 머무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블로그라는 또 하나의 무대가 열렸다. 글을 쓰는 일은 강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꺼내는 작업이었다. 말로 하기 어려운 내 마음을 천천히 적어가다 보면, 나도 몰랐던 감정이 글 속에서 흘러나오곤 했다. 어느 날, 티스토리 블로그가 애드센스 승인을 받았다는 알림창이 떴을 때,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군가에겐 그저 ‘광고 수익 창출 가능’이라는 시스템 메시지였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위로였다. 나의 존재를 조용히 인정해주는 듯한, 작은 사인처럼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 마음속 깊은 외침을 들었다.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그 깨달음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고, 깊이 울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이후, 나는 나를 더 이상 채근하지 않기로 했다.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오래된 믿음을 하나씩 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글을 쓸 때도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살핀다.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마음 깊은 곳, 스스로도 잘 몰랐던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어디에도 머물지 못했던 마음들을 글로 옮기며, 나는 천천히 나에게로 돌아오는 중이다. 말로 다 풀 수 없던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나는 한 줄 한 줄 사이에서 나를 마주하고 있다. 흐트러진 마음의 조각들이 글 속에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에게로 조금 더 다가가는 중이다. 성과나 결과로 평가되는 삶이 아니라, 과정과 진심으로 채워지는 삶. 그것이 지금의 내가 매일 쓰는 이유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 마음에 말을 건다. “지금 괜찮아?” “오늘은 조금 덜 아팠니?” 그렇게 조용히 묻고, 따뜻하게 답한다. 내 마음을 향해, 다시 시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젠 누군가의 평가보다, 내 안의 진심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블로그는 어느새 나에게 또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서 있다. 마음공부는 그런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 무대 위에서, 조용하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로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5. 마음공부는 나를 붙잡는 연습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또 다른 이별이 찾아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통화하며 웃던 막내동생이, 다음날 아침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날부터 45일간,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기도하고, 또 기다리고, 작은 눈빛 하나에도 기대를 걸며 버텼다. 하지만 그 시간의 끝에서, 우리는 결국 동생의 손을 놓아주어야 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후,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3년 뒤, 이번에는 오빠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희망과 두려움 사이를 오가며, 4개월이란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작은 변화에도 기대고, 또 좌절하며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오빠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게 나는 사랑했던 이들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텅 빈 마음 안에서 외로이 서 있었다. 세상의 소음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내 안은 쩌렁쩌렁한 침묵뿐이었다. 너무도 깊은 어둠 속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들이 내 곁을 떠난 후, 이제는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 시간이 남았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시간. 그때,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준 것은 마음공부였다. 마음공부는 고통을 없애주는 기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의 태도였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날들 대신,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연습.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말 걸어주는 연습. “지금 너무 슬퍼. 괜찮지 않아.” “그래도 이 감정, 내가 있는 그대로 안아볼게.”

그 말들을 나는 매일 내 마음에 속삭였다. 울음을 삼킨 밤에도,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해야 했던 날에도. 마음공부는 나를 다독이는 말, 나를 알아주는 말로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말들은 곧 블로그에 한 줄 한 줄 적혔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기록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그렇게 나는 매일, 아픈 마음을 품은 채 다시 삶의 문을 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연습은 계속되고 있다.

말 대신 마음으로 — 블로그에 적는 나의 두 번째 강의

그 시절의 나는 강단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할 메시지를 위해 밤을 새워 연습했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았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그 자리가 좋아서, 때로는 무대보다 그 과정을 더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 열정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였고, 그 몰두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생은 예고 없이, 반복해서 마음을 시험했다. 내가 아직 처녀였을 때,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었기에,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이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으며 나는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 상처가 온전히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인생은 깊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또 다른 이별이 찾아왔다. 어제까지 통화했던 막내동생이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졌고, 45일 동안 병원에 머물렀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던 시간이었다. 기도하고, 기다리고, 다시 기도하며 버텼던 그날들. 끝내 우리는 동생의 손을 놓아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뒤, 오빠마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희망과 두려움 사이를 오가며, 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주 작은 변화에도 숨죽이며 기대했다가, 또 그만큼 좌절하며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그 끝에서, 또 한 번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난 뒤, 나는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제는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고. 그때, 나를 붙잡아준 것이 있었다. 바로 마음공부였다. 마음공부는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고통을 품고도 살아가는 힘을 주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지 마.” 마음공부는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너무 슬퍼. 괜찮지 않아.” “하지만 이 감정, 그대로 안아볼게.” 나는 그 말을 매일 내 마음에 건넸다. 그리고 그 말을 글로 옮겨 블로그에 기록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지금의 나는 말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글에 담아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 블로그는 내 삶을 정리하는 공간이자, 내 안의 진심과 연결되는 창이다. 매일 한 줄씩 쌓아 올린 글들이 어느새 하나의 길이 되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치유하고, 또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시원한 밀크티 한 모금이 그랬듯, 글 한 줄이 누군가에게 잠시 쉬어갈 자리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조용히 곁에 머무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진심을 담아 한 줄을 쓴다.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건네는 사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닌, 마음에 남는 사람, 그런 길 위에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글을 쓴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방식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블로그를 쓰는 진짜 이유는 단 하나다. 나도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 당신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가는 이 마음을, 이 시간을, 글로 남긴다. 내가 견뎌낸 하루하루가 누군가의 오늘을 붙잡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길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나처럼 슬픔을 품고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작게라도 숨을 돌릴 수 있기를. 이곳이 눈물을 감추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의 쉼터가 되기를. 그 바람 하나로, 나는 오늘도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렇게 나는 살아남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도 살아갈 수 있다. — NOA, 마음을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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