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아킬레스건을 마주하는 순간, 내면의 아이가 치유될 때

Noamindcare 2025. 8. 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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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릴 때가 있다. 누군가의 불쌍한 모습이나 절박한 사연을 접했을 때 갑자기 마음이 무너지고, 이유 모를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경험이다. 단순한 연민이라고 하기엔 그 울림이 지나치게 깊고 강하다. 그때 우리는 종종 과거의 감정과 기억이 현재와 겹쳐지는 듯한 묘한 순간을 맞닥뜨린다. 이 감정의 뿌리는 단순히 타인에게 향한 동정심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상처나 억눌린 감정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아킬레스건’을 마주할 때가 바로 내면 치유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킬레스건을 마주하는 순간, 내면의 아이가 치유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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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쌍함에 빠져드는 감정의 메커니즘

누군가의 아픔이나 고통스러운 상황 앞에서 유독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사람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고,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하나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왜 저렇게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될까?”,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건드릴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채 감정은 이미 깊이 빠져든다. 이러한 감정 반응은 단순한 공감이나 연민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일상의 대화나 상황에서라면 충분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도, 특정한 사람이나 상황 앞에서는 유난히 감정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치 과거의 어떤 기억이 현재의 이 장면에 겹쳐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머리는 지금 이 상황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도, 마음은 이미 과거의 감정 속으로 회귀해 있다. 이처럼 ‘불쌍함’이라는 감정에 과하게 몰입되는 현상은, 종종 과거의 미해결 감정이나 억눌린 상처에서 비롯된다. 특히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의 불안정한 관계나 역할 뒤바뀜, 반복된 희생 요구를 경험한 사람들은 ‘누군가를 도와야 안전하다’는 신념을 내면화하기 쉽다. 예를 들어 부모의 갈등 속에서 아이가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고 상황을 중재하려 하거나, 형제자매의 실수를 대신 감당해야 했던 기억이 반복되면,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자리잡게 된다. 그 책임감은 곧 **'나라도 도와야 한다', '그 사람을 그냥 두면 안 된다', '내가 외면하면 무언가 더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강박으로 바뀐다. 이런 생각은 겉으로는 타인을 위한 선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감정과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무의식적으로, ‘도와야만 내가 살아남는다’는 생존 전략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 전략은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작동한다. 직장에서 힘든 동료를 도우려다 지치고,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다 스스로의 감정이 망가지는 일도 많다. 혹은 연인 관계나 친구 관계에서, 반복해서 도와주고 희생하지만 되돌아오는 고마움이나 배려는 없다. 그러면서도 “이번엔 다를 거야”, “내가 더 해줘야지”라고 생각하며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이처럼 불쌍함에 이끌려 스스로를 잊는 감정의 메커니즘은, 과거에 뿌리를 둔 감정 패턴일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런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잘못되었다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만큼 섬세하고 감정에 민감하며,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감정의 방향이 외부로만 향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무심한 경우가 많기에, 내면이 점차 지쳐가고 무너지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이 정도쯤은 괜찮아”, “이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그 감정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왜 나는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까지 감정이 흔들릴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방향을 안으로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질문 뒤에는,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는 마음속 아이가 있다. “이번엔 나도 좀 도와줘”, “나도 좀 알아봐줘”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바로 감정의 자동 반응을 넘어 진짜 나를 만나는 시작이다.


2. 내면에서 들려오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

감정에 휩쓸려 누군가의 고통에 빠져들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잠깐만, 지금 나 자신은 괜찮은 걸까?”, “이 감정은 정말 지금 이 상황 때문일까?”, 혹은 아주 단호하게, “지금은 나부터 지켜야 해.”라고 말하는 속삭임. 이 목소리는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익숙한 감정의 흐름을 멈추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라났다는 신호다. 감정의 물결에 휘말리는 대신, 그 흐름을 ‘의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그것이 바로 내면의 변화다. 이 목소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마음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그러나 늘 존재해 왔던 나의 ‘본래 감각’이 드디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주변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타인을 먼저 살피는 역할을 자주 해온 사람일수록, 그 본능은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네가 참아야지”, “지금은 네 감정보다 저 사람이 더 중요해”, “조용히 해, 분위기 망치지 마”와 같은 말들이 마음에 각인되며, 자연스럽게 자기 보호의 목소리 대신 타인을 우선하는 방식이 몸에 배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에 먼저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은 점점 지쳐간다.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이 결국 나를 다치게 만들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소진 속에서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라는 막연한 느낌이 쌓인다. 이때 들리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내면의 선언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의 감정을 진심으로 돌보고, 지금의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매우 건강한 반응이다. 이 목소리를 인정하고 따라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점점 더 균형을 찾게 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바라보는 거리를 가질 수 있게 되고, 타인을 돕는 일 역시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처음엔 혼란스럽다. 지금껏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나보다 타인이 우선’이라는 믿음을 뒤집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작은 목소리를 듣고도 외면하거나, 여전히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진실이 있다. 내가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말한다. “이제는 나를 먼저 돌보자”, “괜찮아, 너부터 살피는 것도 사랑이야”, “도망가지 말고 나를 봐줘.”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들어주는 순간, 마음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오랫동안 찾고 있던 안전한 품은 타인에게서가 아니라, 내가 내게 내어주는 따뜻한 자리에 있었다는 것


3. 오래된 기억이 현재를 흔드는 이유

 

사람의 감정은 언제나 현재만을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의 상황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의 뿌리는 종종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장면이나 말, 표정 하나가 지금 이 순간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마음을 흔든다면, 그 뒤에는 분명히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감정의 매듭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감정 트리거’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외면, 차가운 말투, 다급한 도움 요청 같은 요소들이 현재 상황에서는 그리 큰 문제나 갈등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사람에게는 매우 강렬한 감정 반응을 일으킨다. 마치 상처 위를 누가 툭 건드린 듯이,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눈물이 차오르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노나 무기력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런 감정은 대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억울함, 외면, 방치, 무력감 같은 감정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내면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비슷한 감정의 파동이 현재에서 발생할 때 ‘지금의 감정’처럼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감정을 언어화하거나 정리할 수 없었기에, 그 감정들은 오롯이 몸과 마음에 저장되어 있다. 특히 가정 내에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러야 했던 경험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 신호에 과도하게 민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불안정한 감정을 어린 나이에 읽어내야 했던 사람, 집안의 갈등을 중재하거나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던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했던 상황’에 익숙하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는 종종 ‘내가 뭔가 잘못하면, 누군가가 다칠 수 있다’는 식의 왜곡된 책임감이 무의식 깊이 자리 잡는다. 이때 마음은 이렇게 배운다. “내가 말하면, 누군가 혼날 수 있어.” “내가 나서면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나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 이런 내면의 학습은 감정을 회피하게 만들고,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게 한다. 문제는, 그렇게 억눌렸던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올라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봤을 때, 그 사람의 감정이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지고,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기억은 때로 나조차 잊고 있던 장면일 수도 있다.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음속 어딘가 깊숙이 감춰 두었던 그날의 감정이,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표정이나 말투, 이야기 한 조각에 의해 다시 열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감정은 현재보다 과거를 더 많이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오래된 기억이 현재를 흔들 때, 우리는 쉽게 자신을 비난하거나 감정에 끌려가기 쉽다. “왜 이렇게 예민하지?”, “내가 너무 과민한가?”라고 자신을 질책하기보다는,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해받지 못했던 감정, 꺼내지 못했던 말, 표현되지 못한 상처들은 이렇게 불쑥 올라올 때마다 “이제 나 좀 봐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감정은 결코 ‘이상한 반응’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향해 보내는 신호다. 그 신호를 억누르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에 묶인 감정을 조금씩 풀어낼 수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오래전 나의 내면 아이가 보내는 작은 울림임을 알아차릴 때, 치유는 그제서야 시작된다.

4. 반복되는 감정 패턴을 이해할 때 생기는 변화

사람은 누구나 반복되는 감정 패턴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과도하게 반응하고, 도와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정작 자신의 상태는 뒤로 미루는 행동이 반복된다면, 그건 단순한 성격 문제나 착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이 각인된 무의식적 반응이며,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오래된 생존 전략이다. 이러한 패턴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며,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감정 표현이 억눌렸거나, 어떤 특정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던 환경 속에서 자란 경우, 마음은 외부의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도록 학습된다. ‘조용히 있어야 안전하다’, ‘누군가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맞춰야 한다’,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믿음이 무의식 깊이 자리잡으며, 감정은 자동적으로 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런 감정 패턴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반복된다. 특히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박, “이 사람을 외면하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죄책감, “상대의 고통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착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면, 그 안에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감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감정은 종종 현재의 삶에서 **감정적 소진(burnout)**이나 관계에서의 불균형,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반복해서 희생하는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은 자신이 계속 손해 보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단순한 이익과 손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역할을 놓으면 나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도우며 인정받고, 필요로 되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가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공부를 통해 이런 반복을 인식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동안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의심하지 않았던 감정의 흐름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나는 늘 이렇게 반응하는 걸까?” “이게 정말 지금의 상황 때문일까?”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서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식의 흐름에 의식의 빛이 닿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감정 패턴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의 선택을 새롭게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라는 물음은 곧 ‘이제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때부터 우리는 감정에 자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예전 같았으면 즉시 반응했을 상황에서, 잠시 멈춰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지금 나도 괜찮은가?” “이 상황은 내가 전부 책임져야 할 문제인가?” “내가 나를 지키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닐까?” 이 질문들 하나하나는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타인을 위한 희생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보는 연습은, 감정의 균형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이 균형 위에서 맺는 관계는 더 이상 일방적이지 않고, 진정한 상호 존중과 연결로 이어진다. 반복되는 감정 패턴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패턴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과거의 감정이 현재를 지배하는 대신, 현재의 내가 과거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게 될 때, 그 반복은 더 이상 나를 옭아매는 굴레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된다.


5. 감정의 흐름을 멈추고,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할 때

감정은 대체로 자동 반응처럼 작동한다. 특히 과거의 상처나 익숙한 역할이 반복되던 상황에서 형성된 감정은 더욱 빠르게 흘러간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책임감이 작동하며, 경계 없이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흐름을 멈추는 것이 가능해지는 때가 있다. 이전 같았으면 눈앞의 상황에 즉시 반응했겠지만, 지금은 마음속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 나는 괜찮은가?”, “이건 정말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인가?”, “이 감정은 지금 이 상황만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잔재가 아닐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바로 이 순간이 내면의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런 멈춤은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있게 감정을 바라보기 위한 선택이다. 타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지키는 선택을 통해 더 건강하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 멈춤은 내 안의 무의식을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이고, 내면의 아이가 지금은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도와주는 안정장치가 된다. 마음공부에서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자신을 구하려는 본능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순간, 마음속에서 ‘이건 아닌데’라는 신호를 감지하지만, 타인의 감정이나 사회적 역할, 혹은 죄책감에 밀려 그 신호를 무시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신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우선순위에 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자기 보호이며, 자기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이다. 예를 들어, 힘든 사연을 듣고 마음이 흔들릴 때, 이전에는 그 감정에 휘말려 나를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이제는 이렇게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내 마음의 안정도 함께 지켜야 한다.” “내가 먼저 무너지면 누구도 도울 수 없다.” “이번에는 나를 먼저 안아주자.” 이러한 자기 돌봄은 자기중심적 행동과는 분명히 다르다. 자기중심성은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지만, 자기 보호는 내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함께 존중하는 태도다. 이는 관계에서 새로운 균형을 만들며, 나의 마음이 더 이상 무너지는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지 않도록 돕는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멈춘다는 것은 약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순간보다 용기 있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 안에서, 마음속 어린아이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괜찮아. 더는 참지 않아도 돼. 지금은 내가 너를 지켜줄게.”


[결론]

우리 모두는 한 번쯤 감정의 반복 속에서 헤맨다. 누군가의 고통에 휘말리고, 도우려 애쓰다 지치고, 결국 나를 잃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누구를 지키려 했던 걸까?”, “그 사이 나는 나를 얼마나 외면하고 있었을까?” 마음공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감정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기보다, 그 흐름을 바라보며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의 나, 말하지 못했던 나, 외면당했던 나의 마음이 있다. 이제는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도망치지 않고, 그 감정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연습. 반복되는 패턴을 자책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나의 서사를 읽어주는 시선. 그것이 바로 진짜 회복이며, 진짜 치유의 시작이다. 과거의 상처는 완벽하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상처가 내 삶을 좌우하지 않도록 만들 수는 있다. 그 시작은 단 한 가지 문장으로부터 가능하다. “나는 나를 지킬 권리가 있다. 나를 지키는 선택이 곧,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


🪶 NOA, 마음을 기록하는 사람
오늘도 마음의 결을 따라 써내려갑니다.
글이 머무는 이곳이, 당신에게도 작은 쉼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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