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 내 안의 패러다임 바꾸기

ohom 2025. 6. 26. 05:50

마음공부를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건 감정을 바라보는 법이지만, 그 다음에 마주하게 되는 건 ‘받는 것’에 대한 깊은 저항이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을 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황에서, 아니면 단순히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었을 때조차 마음 어딘가가 불편해진다면, 그건 단순한 겸손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는 데는 익숙하지만, 받는 데에는 서툴다. 특히 오랫동안 남을 위해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렇다. 늘 참고, 맞추고, 배려하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받는다’는 행위 자체가 마치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공부는 말해준다. 받는 것도 능력이며, 때로는 주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마음속 깊은 패러다임, 즉 ‘나는 받을 자격이 없다’는 오랜 믿음과 마주해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우리는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스스로 해내야 진짜다”, “도움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들을 당연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서서히 내 안에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 결과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보다 혼자 해결하려 애쓰고, 설령 누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괜찮아요”라며 정중히 거절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렸다. 이 모든 흐름 아래에는 하나의 감정이 숨어 있다. 바로 ‘미안함’이다. 누군가로부터 받는다는 건, 나 스스로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그래서 마음은 방어적으로 반응하고, 도움 앞에서조차 경직되며, 결국 받아야 할 것조차 놓쳐버린다. 마음은 주고 싶어하면서도 받는 순간 움츠러든다. 그 모순된 감정의 이면에는 ‘나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깔려 있다.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내 안의 패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움을 받을 때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 선물 앞에서 미소를 짓기보다 어색하게 말 돌리던 순간, 칭찬을 들으면 오히려 민망해서 부정했던 모습들. 이 모든 순간들이 가리키는 감정은 ‘자격 없음’이라는 감정의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자격 없음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감정의 층위에 깊이 새겨진 패러다임이다. 받아서는 안 된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감정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는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음속 패러다임이 “나는 자격 없다”고 속삭이고 있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위해 주기만 하며 스스로는 텅 빈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되더라도, “이건 내가 돌려줘야 하는 빚이야”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음공부는 말해준다. 진짜 변화는 ‘받아도 되는 나’를 허락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받은 것을 기꺼이 누리고, 그 안에서 감사를 느끼며, 더 이상 죄책감으로 무게를 얹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진짜 증거다. 이번 글에서는 ‘받는다’는 행위가 단지 타인의 호의를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거울이자, 무의식에 새겨진 믿음을 전환하는 연습이라는 점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연습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기꺼이 받는 나’를 온전히 품는 법을 배워가게 될 것이다.

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 내 안의 패러다임 바꾸기

1. 받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진짜 이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것에 서툴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단지 성격이 조심스럽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대충 넘어간다. 하지만 실제로 마음공부를 하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받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나 겸손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근원적인 감정과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머뭇거리고, 칭찬을 받을 때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치고, 선물을 받았을 때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라고 반사적으로 말하는 사람들. 그 안에는 하나의 공통된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받아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격 없음의 감정 패턴이다. 이것은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믿음이 아니라,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경험과 감정의 축적에서 비롯된 무의식의 언어다. 그 패턴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 형성된다. 어릴 적 “너는 늘 받기만 해”라는 말을 들었거나, 부모에게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 거절당하거나 불편한 표정을 봤던 경험이 있다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나는 무엇을 요구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내면화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성장하면서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뭔가를 요구하면 미움받을까 봐 두렵고,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이 따라온다. 그 마음의 구조는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며, 스스로를 항상 뒷순위에 놓는 습관이 자리 잡는다. 겉보기엔 착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나는 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조용한 전제가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도움을 주려고 해도 그 호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말 괜찮아?”, “이거 받으면 나중에 어떻게 갚지?”, “혹시 내가 너무 민폐 끼치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이 마음은 곧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아무 일도 아닌 듯 웃으며 거절하거나, 정중한 척 하면서 마음을 닫고, 기꺼이 받아야 할 것을 스스로 멀리한다. 이런 반응은 일종의 자존감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도움을 받는 순간,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혼자 감당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그렇게 쌓여온 시간들 위에 ‘나는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한다’는 굳은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혼자 감당하는 삶은 언뜻 보기엔 성숙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깊은 고립감과 결핍을 불러온다. 감정은 함께 나누어질 때 회복되며, 삶은 연결을 통해 건강하게 순환된다. 하지만 ‘받지 못하는 사람’은 삶의 연결을 스스로 끊어내고 만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친절을 경계하고, 호의를 받는 대신 늘 주는 역할에만 머무른다. 처음에는 그것이 강인함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점점 고립되고, 지치고, 텅 비어간다. 마음속에 ‘나는 받을 자격이 없다’는 패러다임이 강할수록, 사람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 반복은 결국 내면의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고립은 삶의 다른 모든 영역—관계, 일, 감정의 회복력, 자기표현의 자유로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받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도움을 거절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향한 제한된 시선이며, 내 삶의 가능성을 좁히는 무의식적 결정이다. ‘받을 수 없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은 기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풍요로움도 놓치며, 삶이 보내는 선물마저도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공부는 그 믿음에 조용히 질문을 던지게 한다. “정말 나는 받을 자격이 없을까?”, “누구나 주고받으며 살아가는데, 왜 나만은 예외라고 느끼는 걸까?”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마음의 구조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나조차 몰랐던 결핍의 뿌리와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받아야 할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은, 곧 나 자신을 새롭게 믿어보는 연습이 된다.

2. 자격 없음의 무의식이 내 삶에 남긴 흔적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자격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 더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반대로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말투, 선택, 관계 맺는 방식, 삶의 흐름 전체는 보이지 않게 위축되고 제한된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자격 없음'의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데 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내면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신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게 그냥 내 성격인가 보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하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다 보면 보인다. 받아야 할 것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하며,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음에도 주저했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 뒤에는 자격 없음의 감정이 조용히 숨어 있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오래된 감정의 언어이며, 삶의 무의식적 방향을 결정짓는 힘이 된다. 자격 없음의 무의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이유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할 것 같고, 상대가 실망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친밀감보다 거리를 택하고, 누군가의 호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늘 반사적으로 “괜찮아요”라고 웃으며 선을 그으며 살아간다. 또 어떤 사람은 꿈이나 목표 앞에서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다. 일이 잘 풀릴 기미가 보이면 갑자기 불안해지고, 괜히 스스로를 낮추거나 망설이며 멈추게 된다. 이때 마음속에서는 '잘되면 좋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깊은 뿌리에서는 ‘내가 정말 이걸 받아도 괜찮을까?’라는 감정이 올라온다. 이러한 감정은 아주 미묘하게 작용하지만, 삶을 조용히 움켜쥐고 방향을 틀어버린다. 자격 없음의 무의식은 우리가 성공, 사랑, 돈, 건강, 관계 같은 삶의 중요한 영역에서 제자리에 머물게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돈이 생기면 곧 쓰지 못해 안달이 나고, 다른 사람은 좋은 관계가 시작되면 스스로 깨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또 어떤 사람은 늘 주는 관계만 반복하다 결국 자신만 소진되어 남게 되고, 누군가는 좋은 기회 앞에서 이상하게 뒤로 물러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 모든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허락한 만큼만 삶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격 없음의 무의식이 강할수록 삶의 풍요는 경계의 바깥에서 맴돌게 된다. 무의식은 우리가 허용하지 않은 행복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생각으로는 바라는 삶이 있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여전히 그 삶을 거절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나에게 들어오지 않게 되어 있다. 마음공부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작동 중인 오래된 패러다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는 왜 늘 혼자 감당하는 걸 선택하지?”, “왜 누군가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불편하지?”, “왜 좋은 일이 생기면 왠지 불안하고 불편할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 처음엔 이유 없이 올라오는 불편함이 보이고, 그다음엔 감정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오래전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 자격 없음의 뿌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아주 작고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는 받아보자’, ‘이번에는 숨지 말고 말해보자’, ‘이번에는 도망치지 말고 머물러보자.’ 그렇게 조심스럽게 허락된 한 걸음이, 삶 전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 자격 없음의 무의식은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할수록 더 깊이 숨는다. 나는 잘 살고 있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나는 열심히 살아간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무의식은 감정의 언어로 살아 있고, 그것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지를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삶이 자꾸만 반복되는 사람일수록, 잘 되다가도 어느 순간 멈춰버리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누군가의 호의 앞에서 자꾸 불편해지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은 곳에는 ‘나는 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아주 오래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무의식을 마주하는 것은 두렵고 불편한 일이지만, 그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마음공부가 삶으로 전환되는 출발점이다.

3. 받아도 죄책감이 드는 사람들

누군가가 정성껏 무언가를 건넸을 때, 우리는 보통 “고마워요”라는 인사와 함께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 마음 한 켠에 미묘한 불편함이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좋은 일이었고, 호의였고, 필요한 도움이었는데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쩐지 무거운 감정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곧 이런 생각이 따라온다. “이걸 그냥 받아도 되는 걸까?”, “나중에 꼭 갚아야 할 텐데”, “혹시 부담을 드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은 처음엔 배려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 이면에 ‘받으면 죄스럽다’는 패러다임이 자리하고 있다. 받아도 미안하고, 받아도 죄책감이 든다는 건, 결국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자신을 충분히 허락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감정은 단지 감사 인사를 놓친 문제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 마음의 구조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어떤 기준 아래에서 살아왔다. 부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눈치를 보며 자랐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스스로 챙기고 조심해야 사랑받는다고 배워왔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받는 것’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 일로 인식된다. 누군가가 준 만큼 나도 뭔가를 돌려줘야만 관계의 균형이 맞는다고 여긴다. 이 균형이 깨질까 봐 두렵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진심으로 누리고 기뻐하기보다는, 마음속에서는 그 순간부터 어떤 빚을 진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주는 사람’으로서의 위치에 익숙하다. 도움을 주고, 시간을 내주고,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역할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내가 있어야 저 사람이 편하겠지”, “내가 이걸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은 겉으로 보기엔 헌신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낮은 위치에 머무르며, 받는 입장에 서는 것을 불편해하는 깊은 습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오히려 본인을 도우려 하거나, 무언가를 베풀려 하면 마음이 얼어붙는다.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 놓인 자신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받은 만큼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종종 스스로를 다시 '주는 사람'으로 돌려놓으며, 관계의 균형은 다시 익숙한 틀로 회귀하게 된다.

마음공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준다. 왜 나는 주는 건 익숙하면서, 받는 건 이렇게 힘든 걸까? 그 질문을 깊이 들여다보다 보면 결국 ‘자격’과 ‘사랑받는 조건’이라는 무의식의 뿌리에 닿게 된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는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항상 배려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린아이가 그 안에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여전히 조건을 채워야만 무언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조건을 만족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조금 받을 수 있다고 느낀다. 이 구조는 곧 죄책감으로 연결된다. 나는 아직 충분히 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먼저 받는 건 나쁜 일이라는 신념이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 죄책감은 마음속에서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감정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아무리 상대가 진심으로 베풀었다 해도, 내가 그것을 누리는 순간 죄책감이 몰려오고, 결국 그 감정을 피하기 위해 다시 ‘주는 사람’의 역할로 도망치게 된다. 그 반복은 곧 관계에서의 고립으로 이어진다. 진짜 친밀감은 주고받음의 순환 안에서 자라나는 것인데, 늘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 처음에는 관계가 깊어지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인 흐름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엔 피로와 상실감만이 남는다. 마음은 점점 닫히고, 관계도 얕아지며, 결국 누군가와 진심으로 연결되는 경험조차 어려워진다. 마음공부는 말해준다. 받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그리고 그 감정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진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 받은 것을 기꺼이 누리고, 죄책감 없이 즐기며, 그것이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타인의 사랑의 표현임을 받아들이는 힘.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증거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삶은 나를 위해 열리기 시작한다.

4. 받는 연습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다

마음공부를 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되는 문장은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감정적인 다정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자기사랑은 삶의 여러 지점에서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과정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나는 얼마나 기꺼이 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누군가의 친절한 말 한마디나 도움의 손길, 작은 선물 앞에서 머뭇거린다. “이걸 받아도 될까?”, “이렇게까지 나를 챙겨도 되는 걸까?”, “내가 받을 만큼 충분히 노력했나?” 그런 생각이 불쑥 떠오르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자격 없는 나에 대한 오래된 습관이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받는다는 건 단지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수용하는 일이 아니라,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는 자기사랑의 거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충분히 허락한다. 힘들면 쉬게 하고, 외로우면 누군가의 위로를 받게 하며, 기회가 왔을 때는 움츠러들지 않고 그것을 잡는다. 반면 자기 안에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쌓여 있는 사람은 늘 자기를 미루는 선택을 한다. 받기보다는 주기를 반복하고, 자신에게는 늘 ‘조금 더 참아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한다. 그렇게 해서 일상은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마음속엔 늘 뭔가 비어 있는 감각이 남는다. 아무리 잘해도 채워지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허전함. 그것은 결국 자신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았다는 신호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면, 세상이 주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해, 받는 연습이 곧 나를 사랑하는 연습인 이유는 바로 ‘나는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라고 마음으로 말해주는 순간이 곧 자기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주는 사람’의 위치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사회 속에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고 베풀며 살아왔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늘 주기만 하는 삶은 결국 자신을 소진시키고, 나중에는 누구에게도 온전히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렇게 받지 못한 자신을 향한 분노가 쌓인다는 점이다. "나는 왜 이렇게 외롭지?", "나는 왜 늘 혼자 감당해야 하지?" 그렇게 묻지만, 실은 자신이 가장 먼저 자신에게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그런 반복을 멈추는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주기만 하지 않고, 나를 위해 받는 선택을 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변화의 시작이 된다. 받는 연습은 생각보다 어렵다. 마음을 여는 데에도, 선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내가 나를 믿는 데서 나온다. '내가 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 '나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감각, 그 감정이 마음 깊이 스며들 때 우리는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고, 움츠러들지 않고, 기꺼이 받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삶은 아주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필요한 것이 다가오고, 관계는 더 부드럽게 연결되고, 자신을 향한 시선도 훨씬 따뜻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받는 연습’을 통해 세상과의 관계뿐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주기만 하던 나에서, 받을 줄 아는 나로 변화하는 과정은 곧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받는다는 건, 결국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일이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그냥 내가 나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는 일. 그 간단한 문장이 마음에 스며들 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제는 괜찮다. 이제는 받아도 된다. 그리고 이제는, 그걸 죄책감이 아니라 사랑으로 누릴 수 있다.

5. 받는 나를 허락한 순간,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엔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한다. 지금 내 감정은 무엇인지, 어떤 순간에 불편함이 올라오는지, 왜 나는 늘 혼자 해결하려 하는지, 이런 질문을 던지며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그런데 이 공부가 점점 깊어지면 한 가지 지점에 다다른다. ‘나는 왜 이렇게 받는 게 힘들까?’ 처음엔 단지 성격이 조심스럽거나, 타인을 배려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다 보면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나는 나를 충분히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나를, 선물을 받는 나를, 칭찬을 기쁘게 수용하는 나를, 사랑을 받아들이는 나를 늘 어색해했고,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나 스스로가 완벽해졌을 때에야 겨우 뭔가를 받을 수 있다고 느껴왔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은 겉보기엔 문제없어 보였지만, 사실은 수많은 기회와 풍요를 흘려보낸 시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깨닫게 된다. 받는다는 건 단지 물질이나 도움을 수용하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연결을 다시 허용하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공부를 해오며 조금씩 변화가 쌓이고, 내면의 패턴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예전 같으면 거절했을 말을 이제는 “고마워요”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한마디는 작지만, 내 안에서 아주 큰 전환을 일으킨다.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죄책감 대신 정당함을 느끼고, 선물을 받으며 미안함보다 감사함이 먼저 올라오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에 방어하지 않고 마음을 열게 된다. 그 작은 허락 하나가 나를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삶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한다. 받는다는 건 결국 삶의 문을 여는 일이고, 내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조용한 선언이기도 하다. 그 변화는 어떤 성취보다 값지다. 예전에는 ‘받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썼던 나였다면, 이제는 기꺼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다. 그 자리가 결코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꼭 필요한 위치였음을 알게 된다. 마음공부는 자꾸만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 내면의 목소리를 조용히 가라앉히며, 나에게 묻는다. “받아도 괜찮지 않아?”, “지금 이 순간, 충분하지 않아?”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지만, 한 걸음씩 나를 허락하는 연습을 해 나갈수록, 삶은 확연히 달라진다. 받는 사람이 되면 삶은 다르게 흘러간다. 풍요는 내가 허용한 만큼만 들어오고, 도움은 내가 요청한 만큼 도달하며, 사랑은 내가 열어놓은 만큼만 머문다. 그러니 삶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면, 그건 내가 ‘받는 나’를 허락했기 때문이라는 걸 잊지 말자. 받는 것을 두려워하던 시절엔 세상의 모든 것이 경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친절은 의무로, 기회는 부담으로, 사랑은 상처로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을 허락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똑같은 장면들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말은 응원이 되고, 손 내미는 제안은 안심이 되며, 사랑은 감사로 녹아든다. 이 변화는 외부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마음공부는 외부의 자극을 견디는 훈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탐구이자 실천이다. 그리고 받는 나를 허락한다는 건, 그 탐구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나는 이제 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받으며 순환 속에 머무는 사람이다. 그것이 삶의 에너지를 되살리고, 마음을 회복시키고, 관계를 따뜻하게 한다. 삶을 바꾸는 건 거창한 선택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장면에서의 다른 태도다. 예전엔 불편했던 그 말 한마디, 무심코 지나쳤던 호의, 마음을 닫고 피하던 상황에서 이제는 조금씩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건 이미 삶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제 받는 사람이 되었고, 나를 허락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변화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오직 나 자신만이 열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새로운 자리로 이끌고 있다.

마음공부의 진짜 성과는 결국 '삶에서의 선택'으로 드러난다

마음공부는 단지 감정을 위로받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오래된 무의식을 발견하며, 그 패턴을 하나씩 바꾸어가는 치열한 여정이다. 그 여정이 성과를 드러내는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소소하고 현실적인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 힘은 조용히 빛난다. 나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여전히 죄스럽고 부담스러운가, 아니면 그것을 통해 연결되고 순환하는 삶을 허락할 수 있는가. 마음공부의 진짜 성과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받는다는 것은 단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격 없음이라는 오래된 무의식을 넘어, 나를 삶의 중심에 놓는 능동적인 선언이다. ‘받아도 된다’는 그 허락은 삶의 많은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풀기 시작하게 만든다. 돈, 관계, 일, 선택 앞에서 '나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음은 놀라운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더 이상 삶에 쫓기거나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고 사소한 연습으로부터 비롯된다. ‘받는 나’를 허락하는 사람은, 동시에 ‘주는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주고도 억울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받아도 경계하지 않는다. 받는 사람은 단지 소외되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삶의 순환 속에서 건강하게 머무르는 사람이다. 마음공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이 순환의 본질이다. 주고, 받고, 다시 나누는 이 흐름을 가로막는 무의식의 벽을 허물어갈 때, 삶은 훨씬 부드러워지고 관계는 훨씬 따뜻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알게 된다. 마음공부의 성과는 명상 중의 평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에게 무엇을 허락하고 있는가. 여전히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믿고 외면하고 있는가, 아니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마음 하나도 소중히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는가. 마음공부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바로 그런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늘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어떤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과연 ‘받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오늘 하루 한 가지라도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거절당할까 봐 하지 못했던 말,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손짓, 칭찬을 들으며 불편했던 그 마음에 조금 더 머물러주기를.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래, 나도 받을 수 있어’라고 말해주기를. 그 순간, 마음은 스스로에게 다시 연결되고, 삶은 새롭게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마음공부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깊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