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침부터 감정이 가라앉아 있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날. 감정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은데 그럴수록 더 힘이 빠진다. 머리로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열 번쯤 되뇌지만, 가슴은 여전히 꽉 막혀 있고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럴 때면 ‘나는 왜 이렇게 감정을 못 다스리는 걸까?’ 하는 자책이 올라오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까지 의식하게 된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나, 감정에 휘둘리는 나, 감정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지는 일상.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무력해지고, 스스로를 향한 신뢰도 흔들린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더 깊게 파고든다. 서로 다른 삶의 방향, 다른 리듬과 감정의 온도차는 대화마저 어렵게 만든다. 그 사람은 언제나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 돈, 결과가 중요하고, 마음이 힘들다는 말에는 ‘그건 네 생각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결들을 알아주길 바란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는 마음, 그저 안아주길 바라는 고요한 간절함, 함께 살아가면서도 외롭다고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 그런 내 마음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의 기준에만 맞추려는 상대를 바라볼 때, 마음은 더 깊이 무너진다. 감정을 억지로 다스리려 하다 보면 더 지친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라는 생각이 들고, 때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감정은 잘못도, 실패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 내 마음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 무너진 날, 우리는 더 이상 참기보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그 순간이야말로 마음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다. 이 글에서는 감정이 흐트러질 때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지를 마음공부의 시선으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대신,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나를 품어주는 방법. 감정이 삶을 삼키지 않도록, 오히려 감정 속에서 나를 더 단단히 만나는 연습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바라보는 연습부터 시작하세요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감정을 밀어내거나 부정하려는 습관을 반복하게 된다. 슬픔이 올라오면 금세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말하고, 분노가 치밀면 좋은 사람처럼 굴기 위해 억누르며, 무기력해지면 ‘이러면 안 되는데’라며 스스로를 닦달한다. 하지만 감정을 그렇게 다뤘을 때, 정말 그 감정이 사라졌던 적이 있었을까? 대부분의 경우 억누른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마음 깊숙이 내려가 고요하게 잠복해 있다가,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더 큰 파도처럼 밀려오게 된다. 감정은 무조건 참는다고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받지 못할 때 더 거세지고 거칠어진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건 단순히 무거운 마음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를 인식하고 그 감정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힘에 가깝다. ‘감정을 바라본다’는 건 그 감정을 없애거나 다스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건 판단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좋다 나쁘다 나누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정이 흐르도록 허락해주는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는 날, ‘왜 또 이래’라는 말보다 ‘아, 오늘은 이렇게 가라앉아 있구나’라고 말해주는 그 한 마디가 마음을 지키는 첫걸음이 된다. 이 연습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다. 감정을 바라보는 일보다 감정을 설명하거나 분석하거나 혹은 회피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면, 감정의 중심에 휘둘리지 않고도 내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는 힘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아침부터 우울하고 짜증이 나는 날이라면 ‘지금 나는 우울해’ ‘나는 짜증이 났다’는 것을 문장으로 적어보거나, 속으로 반복해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주도권이 조금은 내 쪽으로 돌아온다. 감정은 알아차려질 때 비로소 고요해지고, 감정은 인정받을 때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을 실패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감정이 올라오면 ‘나는 감정 조절이 안 돼’, ‘나는 약하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켜 스스로를 더 무너뜨리는 고리를 만든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는 건 잘못이 아니고,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약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내면이 강한 사람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건 아무도 몰라주는 외로움을 만드는 일이지만, 감정을 바라보는 건 내 마음을 내가 껴안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 감정을 온전히 ‘느껴주는 연습’을 해보자. 마음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 연습은 감정의 파도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닌, 그 파도 위에 중심을 잡고 서 있는 나로 만들어주는 첫 번째 마음의 기술이다.
2. 감정을 조절하려 애쓰기보다, 감정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감정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가혹해진다. “왜 이렇게 못 견디지?”, “이 정도로 힘들 일은 아니잖아”, “정신 차려야지.” 그렇게 내 안의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 동안, 마음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스스로를 향한 신뢰도 약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조절하려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지만, 사실 감정은 조절의 대상이기보다 이해의 대상에 가깝다. 감정을 억지로 바꾸려 할수록 마음은 더 크게 저항하고, 그 저항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감정은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 그 감정이 생겨난 맥락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단순히 화가 났다, 속상하다, 우울하다고 판단하기보다는 ‘왜 나는 지금 이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하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감정은 그 자체보다 그 감정을 둘러싼 해석과 판단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에 서운함이 밀려올 때, 그 감정은 단지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관계의 어긋남, 존중받지 못했다는 기억,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체념이 겹쳐진 복합적인 반응일 수 있다. 이처럼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내 마음의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감정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자신의 감정에는 인색하다. 친구가 힘들다고 말하면 들어주고 위로해주지만, 정작 나 자신이 힘들 때는 ‘이러면 안 돼’라고 타이르며 감정을 부정한다. 그럴수록 마음은 외로워지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감정들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감정을 조절하려는 시도 대신,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들어주는 태도야말로 마음을 지키는 진짜 연습이다. 내가 나의 감정을 이해해주기 시작할 때, 마음은 점차 회복을 향해 움직인다. 감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건, 감정의 ‘존재 이유’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모든 감정은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슬픔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나타나고, 분노는 나의 경계를 침범당했기 때문에 올라오며, 불안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감정이 생겨날 때마다 그것을 ‘없애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라는 시선으로 다가갈 때, 감정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감정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곧 나와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감정을 조절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감정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에, 억지로 조절하려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볼 때 훨씬 더 건강하게 흐를 수 있다. 오늘 하루,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 괜찮아, 나에겐 이럴 이유가 있어.” 그 한마디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작이고, 그 순간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것은 감정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감정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는 방법이다. 감정의 파도 속에서 휘청이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나의 감정을 따뜻하게 들어주는 바로 나 자신이다.
3.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찾는 연습을 하세요
감정은 마치 파도 같다. 고요하던 순간에도 갑자기 밀려오고, 아무 일도 없던 날에도 마음 한가운데를 휩쓸고 지나간다. 누군가의 한마디, 지나친 표정 하나, 또는 나도 모르게 떠오른 과거의 기억 하나만으로도 감정의 파도는 순식간에 거세진다. 감정이 요동치는 날에는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평소엔 넘길 수 있었던 말도 뾰족하게 박혀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그 감정에 휘둘린 나 자신이 싫어지고, “왜 나는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라는 자책까지 더해져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하지만 파도가 몰려올 때 중요한 건, 그 파도를 막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다. 바다를 마주한 사람은 파도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그 위에 선다면 휩쓸리지 않는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밀려올 땐 억지로 참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의 중심에 나의 ‘마음 자리’를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어떤 감정이 오더라도 그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나’로 서는 것이다. 중심을 갖는다는 것은, 감정에 속하지 않고 감정을 바라보는 자리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이다. 이 연습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막연한 답답함이나 화, 슬픔이 올라올 때 그것을 그냥 넘기지 말고, “지금 나는 실망을 느낀다”, “지금 나는 무력하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감정이 지배하는 쪽에서 내가 감정을 인식하는 쪽으로 주도권이 이동하는 순간, 마음속엔 작은 고요가 찾아온다. 또한 일상 속 루틴을 만들어두는 것도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좋은 도구가 된다. 감정이 무너질 때 나를 다잡을 수 있는 단단한 루틴이 있다는 것은, 마치 흔들릴 때마다 손잡을 수 있는 기둥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짧은 명상일 수도 있고, 혼자 걷는 산책일 수도 있고, 조용히 일기장에 마음을 쓰는 시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루틴이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단 10분이라도 그런 고요한 틈을 마련해보자. 감정은 흘러가고, 중심은 남는다. 감정의 중심을 찾는다는 건 결국, 내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든 ‘나는 나의 편’이라는 믿음을 세우는 일이다. 세상에 맞서거나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내 안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그 작은 중심. 그것만 있다면 감정이 아무리 요동쳐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감정의 파도는 늘 반복되지만, 나의 중심은 연습을 통해 점점 더 깊고 단단해질 수 있다. 감정에 휩쓸리는 자신이 자주 답답하게 느껴졌다면, 오늘부터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감정 속에서 중심을 찾는 연습을 해보자. 바다처럼 출렁이는 마음 속에서도 고요한 자리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은, 외부가 아닌 바로 내 안에 있다.
4. 감정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풀어내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억눌린 감정은 마음 깊숙이 쌓여 있다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폭발하거나, 점점 무기력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안에 침전된다. 감정은 에너지다. 기쁜 감정이든,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이든 모두 에너지의 형태로 우리 몸과 마음 안에 존재하며, 흘러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면 결국 어딘가에서 멈춰버린다. 감정의 에너지가 멈춘 자리에는 울컥하는 말투, 지속적인 피로, 의미 없는 폭식, 혹은 멍해지는 정신과 같은 신호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증상들은 나에게 “지금 너의 감정이 길을 잃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이다. 감정은 이해해주는 것만큼이나, 흘려보낼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출구는 누구에게나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히 산책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물로 풀어내는 감정 정화가 필요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분출하는 행위가 치유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방법이 맞다’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맞는 감정의 출구가 무엇인지를 탐색해보는 일이다. 가령, 감정이 과하게 요동치는 날에는 일기장을 펼쳐 그날의 감정을 조용히 적어보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이 올라왔는지,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어떤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써내려가다 보면, 처음엔 분노였던 감정이 실은 외로움이나 슬픔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종종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감정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의 흐름을 정리하는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명상, 혹은 간단한 스트레칭조차도 감정 에너지를 건강하게 순환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것도 감정의 흐름을 만드는 중요한 행위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감정을 판단 없이 들어줄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어도 마음은 훨씬 덜 외롭다. 때로는 타인의 따뜻한 시선과 반응만으로도, 억눌린 감정이 조금씩 녹아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거울을 보며 “오늘 힘들었지?”,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정은 위로받는다. 감정은 결국 ‘소통’을 원한다. 그 소통이 누구와 이루어지든, 감정을 흐르게 한다는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감정의 출구를 만들지 못한 채 억누르고만 살아가는 사람은, 점점 자신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감정의 흐름을 허락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갖게 된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자신을 휘감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운다. 감정을 건강하게 흘려보내는 건 단지 기분 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안전 통로를 만들어주는 일이고, 내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본질적인 작업이다. 오늘 하루, 지금 당신 안에 머물러 있는 감정 에너지는 어디로 흘러갈 수 있을까. 그 답을 찾는 순간, 당신은 감정의 무게에서 벗어나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다.
5. 감정이 나를 휘두를 때, ‘지금 여기’에 나를 머물게 해보세요
감정은 종종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고, 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끌고 간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이 조여오며,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하루를 집어삼키는 날도 있다. 감정은 그렇게 시간을 건너뛰며 우리의 마음을 헤집고,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우리는 현재를 잃고 자신을 잃는다. 지금 눈앞의 풍경은 흐릿해지고,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 있다. 그래서 감정의 폭풍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힘이다. 지금 여기에 머문다는 건 단순히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붙잡아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불안이 밀려오고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 가만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손끝의 감촉은 어떤지, 바닥에 닿은 발바닥의 느낌은 어떤지를 천천히 느껴보는 것이다. 이렇게 몸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면, 감정이 몰고 가던 시간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와 중심을 잡을 수 있다. 감정은 머리에 떠오른 생각과 결합할 때 더 커진다. 그래서 감정이 나를 휘두를 때일수록, 생각이 아닌 감각으로 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연습은 처음에는 아주 미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숨을 쉬는 감각, 눈을 감고 듣는 주변의 소리, 몸의 긴장을 느끼고 천천히 풀어주는 동작들. 사소하고 별거 없어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길이다. 특히 감정이 폭발하거나 마음이 크게 요동칠 때,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의자의 감촉을 느끼고, 손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라고 말해보는 것. 그런 작은 순간들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붙잡아준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또 다른 방법은 마음을 단순한 행위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을 따르며 그 물줄기를 바라보는 것, 천천히 걷는 동안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인식하는 것, 차 한 잔을 마시며 온전히 그 온도와 향을 느껴보는 것. 이런 단순한 행위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동안, 복잡했던 감정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게 된다. 감정은 본래 흘러가도록 만들어진 에너지이기에, 우리가 멈추어 있는 이 순간에 고요하게 머물 수 있다면, 감정은 어느새 조용히 물러날 준비를 하게 된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기술은 마음공부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연습이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의식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보려는 태도가 있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차곡차곡 자라난다. 감정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그 짧은 시간, 나의 몸을 느끼고 지금의 공간에 시선을 두는 그 순간.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안정되고, 나라는 존재는 다시 나를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감정은 항상 오고 간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떤 감정도 나를 삼킬 수는 없다.
감정이 흔들릴 때, 당신을 지키는 가장 깊은 연습
감정을 조절한다는 말은, 때로 우리에게 너무 가혹하다. 마치 감정이란 것은 언제든 내가 마음먹으면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감정이 흐트러지는 건 의지가 약하다는 뜻처럼 들릴 때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감정은 우리가 선택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어느 날 불쑥 찾아와 마음을 흔들고, 때로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조절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순간에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나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정으로부터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게 된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다섯 가지 마음의 연습을 함께 살펴보았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부터 시작해서, 감정을 조절하기보다 이해해주는 태도, 감정의 파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마음의 중심 찾기, 감정 에너지를 건강하게 풀어내는 방법, 그리고 결국엔 ‘지금 여기’로 돌아와 자신을 붙잡는 기술까지. 이 모든 과정은 특별한 기술이 아닌, 내 마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이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실패처럼 느끼는 대신, 감정을 알아차리고 곁에 있어주는 연습은 우리가 매일 조금씩 더 단단한 나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물론, 이런 연습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잘되다가도 또 무너지고, 어떤 날은 감정을 인식하는 것조차 버거운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다시 다짐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을 돌보는 중이야. 잘하든 못하든, 지금 이렇게 알아차리고 있는 것 자체가 괜찮은 거야." 이 한마디가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크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감정이 흐트러지는 순간에도, 그 안에서 나를 지켜주는 힘을 키워준다.
당신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들었다면, 그건 결코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감정에 민감하다는 건 그만큼 섬세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감정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감정은 늘 오고 간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연습하는 것이다. 감정이 요동치는 날, 그 속에서도 나를 따뜻하게 붙잡아주는 내가 되어주길 바란다. 오늘 하루, 마음이 흔들렸던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오늘도 너는 충분히 잘 살아냈어. 감정이 어땠든, 그 감정 속에서 너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낸 사람이야."
“나는 감정에 휘둘렸던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과해온 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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