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다시, 사랑을 배워가는 중입니다》#4

ohom 2025. 4. 6. 11:10

고맙다는 말이 늦게 찾아오는 순간들

4장. 고맙다는 말이 늦게 찾아오는 순간들

우이는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겨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잘 웃었지만,
혼자가 되면 마음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애썼다.

그리고 그 애씀의 방향은 늘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이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 참았고, 더 맞췄고, 더 주었다.

하지만 이한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이는 자주 서운했고,
그 서운함은 점점 쌓여서
‘나는 왜 이렇게 대가 없는 사랑을 하고 있을까’
하는 슬픔으로 변해갔다.

이한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이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장례식 내내,
그가 감정을 꺼낼 수 있도록
그저 곁에 앉아 있어주었다.

이한은 말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우이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는 여전히
작은 기대가 있었다.

"고맙다."
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단 한 번이라도 괜찮으니,
그 말이 우이의 마음을 조금은 덜 외롭게 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말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이의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그 상실은 이전과는 다른 고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같았던 사람.
우이는 오빠를 사랑했고,
오빠는 세상에서 자신을 제일 먼저 알아준 존재였다.

장례식이 끝난 뒤,
우이는 오빠를 위해 49제를 지내기로 결심했다.
몸이 고단하고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기도문을 쓰고, 절을 올리고,
차가운 절 마룻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이번엔 이한이 함께했다.

말없이 절을 따라 했고,
아침마다 함께 향을 피웠고,
조용히 우이의 손에 따뜻한 생강차를 건넸다.

그는 여전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이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의 고마움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오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어느 조용한 밤.
우이가 제등을 밝히고 돌아왔을 때
이한이 말했다.

"나, 너한테… 고마워."
"그때 내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네가 옆에 있어줘서."
"그 말, 이제야 하네."

그 말은
우이의 가슴 깊은 곳에
아주 조용히 닿았다.

눈물이 났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
이토록 늦게,
하지만 너무 따뜻하게 찾아왔다.

우이는 그날 이후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꼭 타이밍 좋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말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말로 나올 수 있다.
감정도, 진심도
때로는 준비가 필요한 법이었다.

사랑은 늘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늦게 도착한다.
그게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진짜 사랑은 기다려주는 마음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은
비로소 마음이 그 말을 감당할 수 있을 때
가장 진하게 전해진다.

우이는 이제 안다.
이한은 그저 표현이 느린 사람일 뿐,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는 걸.

그는 늘 곁에 있었고,
늘 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이는 여전히 사랑이 서툴다.
하지만 이제,
사랑을 더 조급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진심은
어떻게든 도착한다는 걸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조금 늦게 온 ‘고맙다’라는 말처럼.